8억 엔은 꿈의 꿈의 꿈같은 일일지라도 800만 엔 정도의 보석은 척척 사들이고 싶다. 죽기 살기로 겨우겨우 사는 게 아니라 채소 한두 개 사듯이 가볍게. 그렇게 좀 안 되려나. 응, 그건 안 돼, 라고 교코는 자각했다. 일단 내 힘으로는 어렵다. 하지만 남의 힘을 빌린다면 희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좋아, 열심히 뛰어보자. 22.76캐럿을 꿈꾸며 교코는 힘주어 걸음을 뗐다.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긴자 주오도리 길을 왼쪽으로 꺾어 들었다. 그 앞에 그녀가 오늘 일할 곳, 긴자 퀸호텔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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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초대장이 일종의 상류층 자격처럼 여겨져서 참석하는 여자들은 온몸에 하나야의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나온다. 그러면 당연히 여자들 사이에 거센 경쟁의 불꽃이 튄다. ‘이름도 없는 여배우 주제에 에메랄드 반지를 꼈어?’라든가 ‘흥, 주름 자글자글한 아줌마가 화려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해봤자 빛이 안 나지’라든가, 다들 마음속으로 그런 평가를 한다. 그렇게 되면 좋아, 다음에는 좀 더 값비싼 걸로, 라는 식으로 흘러간다. 즉 하나야는 점점 더 장사가 잘된다. 너무 많이 벌어서 그 이익을 환원해드린다는 명목으로 다시 감사파티를 연다. 불꽃이 번쩍번쩍 튀고 다시금 값비싼 보석이 팔려 나간다는 구조인 것이다. 그러니 남편들 쪽에서는 배겨날 수가 없다. 오늘도 아내들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남의 보석 가격을 가늠해보고 남편들은 그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는 광경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그런 파티장이 교코를 비롯한 밤비 뱅큇 컴패니언들의 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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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 집으로 가요. 정보 교환도 할 겸 맛있는 거 먹자고요. 하긴 아까 먹고 남은 스파게티뿐이지만.” “엇, 눈물이 날 만큼 반가운 말씀을 해주시네? 아, 근데 내가 가진 정보는 먹고 남은 스파게티만큼의 가치도 없을 텐데, 어쩌죠?” 위아래 추리닝 차림으로 시바타는 교코의 원룸으로 건너왔다. 교코가 시바타를 위해 봉골레를 차리는 동안 그는 교코가 꺼내놓은 카라얀의 레코드 재킷을 보고 있었다. “교코 씨가 클래식 팬이라는 건 예상을 못 했는데요?” 그가 감탄한 듯 말했다. “아니에요, 이제부터 팬이 될 생각이죠.” 교코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아까 레코드 대여점에서 빌려온 거예요.” “왜 갑자기 클래식 팬이 될 생각을 하셨을까?” “신데렐라의 조건이거든요. 내가 찍은 왕자님이 클래식을 좋아하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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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문제는 여기서부터예요. 교코 씨라면 이 컵에 독을 어느 정도나 넣을까요?”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어느 정도나 넣어야 죽는지 모르는데. 일단 가지고 있는 독을 다 털어 넣지 않을까요?” “좋아요, 이만큼 먹으면 죽을 것이다, 라고 생각되는 양을 넣었겠죠. 그리고 그걸 넣었다, 자, 여기서 문제.” 시바타는 컵을 손에 들었다. “이 물을 어떻게 마시죠? 단숨에 마실까요, 아니면 조금씩 홀짝홀짝 마실까요?” “물론 단숨에 마시겠죠. 찔끔찔끔 마시면 괜히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맞아요,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겠죠.”
시바타는 컵을 주방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여기서 의문이 생겨요. 자살자의 심리를 살펴보면 대개는 단숨에 마실 수 있는 음료를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렇다면 에리 씨가 맥주를 선택한 건 이상하죠. 지난번에 교코 씨에게도 물어봤지만, 에리 씨는 술이 그리 세지 않아서 맥주 한 잔이 적정량이라고 했어요. 즉 그녀에게 맥주는 결코 마시기 쉬운 음료가 아니었어요. 실제로 죽을 생각이었다면 역시 물이나 주스 쪽을 선택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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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시 사건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은 식후의 에스프레소 커피가 나왔을 때였다. “그나저나 지난번에는 깜짝 놀랐죠? 그때도 이렇게 교코 씨와 커피를 마신 뒤였는데.” 다카미는 맛있다는 듯 커피 잔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 에리 씨라는 분도 뭔가 고민거리가 있었던 모양이죠? 교코 씨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었어요?” “아뇨, 전혀.” “그렇습니까. 에리 씨와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어요?” “3개월 정도였어요. 에리는 그 전에 로열 뱅큇 소속이었거든요.” 이런저런 제약이 너무 많아 그만뒀다는 것, 나고야 출신이라는 것을 교코는 덧붙였다. “나고야? 역시…….” 슬쩍 내비친 그 말에 교코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역시, 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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