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모서權謨書》는 명나라의 대정치가 장거정張居正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장거정은 강성했던 명나라가 몰락하는 전환의 시기에 살았고, 10년 동안 수보(수석 대학사)로 있으면서 기우는 국운을 되돌리고 대명 왕조에 희망과 생기를 다시 불어넣으려고 노력했다. 하버드 대학교의 유명한 중국 역사학자 레이황(중국명 황런위黃仁宇, 1918~2000)은 저서 《만력십오년萬歷十五年》에서 장거정을 생동적으로 묘사했다.
“장거정은 영원한 지혜의 상징이다. 그는 시원시원하게 생긴 얼굴에 수염을 길게 길렀고, 몸에 장식품을 두르는 것을 좋아했으며 도포는 날마다 새것처럼 접은 흔적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장거정의 성품은 용모와 완전히 일치해서, 좀처럼 말을 하지 않지만 한번 말하면 핵심을 찔렀다. 또한, 말이 간단하고 정확하며 의심의 여지가 없어 중국의 옛 격언인 ‘부인불언, 언필유중夫人不言, 言必侑中(저 사람은 말이 없지만 말을 하면 반드시 이치에 들어맞는다)’에 부합했다.”
《권모서》가 《장문충공전집張文忠公全集》에 안 나오는 이유는 후세 사람들이 권모술수에 관한 장거정의 글을 모아 책으로 정리하고 제목을 붙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판본은 일본의 학자가 원본을 베껴 적은 수사본이고, 도쿄 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권모서》는 권모술수에 관해 참고 가치가 매우 높은 보기 드문 중국의 고대 서적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권모서》에 해설을 더했고, 관련 고사 및 고사 속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평가했다. 오류가 있으면 비판하고 가르쳐주시기 바란다. [역주자 서문 : 10~11쪽]
月暈而風, 礎潤知雨. 人事雖殊, 其理一也. 惟善察者能見微知著.
달무리가 지면 반드시 바람이 불고, 주춧돌이 축축해지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 비록 사람의 일은 서로 다르지만 이치는 같고, 오직 관찰을 잘하는 사람만이 미세한 것에서 본질을 발견한다.
어느 날 손님이 유비를 찾아왔다. 황위에 막 오른 유비는 정무를 보느라 많이 바빴지만 성정이 예의 바르고 겸손했으므로 그 손님을 만나기로 했다.
손님도 예의가 발랐다. 그는 유비가 황제가 된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찬양했고, 좋은 입담으로 세상의 흐름을 이치에 맞게 말해 유비도 그의 말을 재미있게 들었다.
그런데 유비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손님의 눈빛이 이상해졌다. 이때 제갈량이 문을 열고 들어와 유비에게 긴히 보고할 것이 있다고 말했고, 제갈량을 본 손님은 잠시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손님이 나간 뒤에 제갈량이 물었다.
“폐하, 방금 여기에 있던 손님은 어떤 사람입니까?”
유비는 손님을 칭찬한 후 의아한 듯 물었다.
“승상은 그를 의심하오?”
제갈량이 말했다.
“신이 보기에는 조조가 보낸 자객 같습니다.”
유비는 깜짝 놀랐다.
“그럴 리가.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제갈량이 말했다.
“신이 들어올 때 그가 폐하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는 표정은 즐거우나 눈빛에 두려움이 있었고, 아래를 쳐다보며 눈알을 사방으로 굴렸습니다. 겉모습이 간사하고 속으로 못된 마음을 품었으니, 필시 조조가 폐하를 죽이려고 보낸 자객입니다.”
유비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병사들에게 자객을 체포하라고 명령했지만 이미 자객은 담을 넘어 도망가고 없었다. [1장. 지찰권_지혜롭게 살피는 것에 관하여 : 19~20쪽]
所謀在勢, 勢之變也, 我强則敵弱, 敵弱則我强. 傾擧國之兵而伐之, 不如今自伐.
지혜를 모으는 목적은 유리한 형세를 조성하기 위해서이다. 형세의 변화란 내가 강해지면 적이 약해지고, 적이 약해지면 내가 강해지는 것이다. 전국의 군대를 동원해서 정벌하는 것보다 적을 스스로 약하게 만드는 것이 낫다.
양견은 주정제를 폐위시키고 황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수나라의 개국 황제인 수문제이다. 어느 날 그는 대신인 고영을 불러서 물었다.
“이제 수 왕조를 세웠으니 마땅히 나라를 통일해야 합니다. 나라 땅을 놓고 전쟁을 벌이는 국면을 끝내고 진陳나라를 평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영은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수나라는 폐하께서 즉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력이 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군사력이 아닌 지혜로 싸워야 합니다.”
수문제는 고영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지혜로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찍이 지혜로 싸우는 것에 대해서 전략을 세웠던 고영은 거침없이 말했다.
“강북 지역은 추워서 농작물이 늦게 익지만 강남 지역은 더워서 벼를 일찍 추수합니다. 적들이 수확할 시기에 우리가 사병과 말을 모으고 전쟁을 준비하는 척하면 적들은 반드시 방어하기 위해서 군대를 정비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농사를 돌볼 수 없어 농작물을 수확하지 못합니다. 적들이 대비를 마치면 우리는 다시 경계를 풀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 적들은 우리가 진짜 전쟁을 준비해도 또 준비만 하다가 말 것으로 믿을 것입니다. 적들이 대비하지 않는 틈을 타 강을 건너고 허를 찌르는 공격을 하면 승리는 떼어 놓은 당상입니다.”
수문제가 고영의 전략을 찬탄하며 매우 기뻐하자 고영이 다시 말했다.
“이밖에도 강남은 땅이 척박해서 땅굴이 아닌 대나무로 지은 집에 식량을 저장합니다. 바람이 불 때 몰래 불을 질러 집들을 태우고, 적들이 다시 집을 지으면 또다시 불을 질러 집들을 태웁니다. 이렇게 몇 년을 반복하면 적은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보고 전쟁을 할 여력이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강한 상태에서 약세인 적을 공격하면 승리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영의 전략을 받아들인 수문제는 진나라를 멸망시켜 통일의 대업을 이루고 ‘개황의 치開皇之治(각종 개혁으로 수나라를 초강대국으로 만든 정치)’를 펼쳤다. [2장. 주모권_책략을 세우는 것에 관하여 : 80~81쪽]
爲政之道, 在於辨善惡, 明賞罰. ?法明而令審, 不卜而吉; 勞養功貴, 不祝而福.
정치의 이치는 선과 악을 분별해서 상과 벌을 분명하게 주는 것에 있다. 법령이 엄격하고 빈틈이 없으면 점을 치지 않아도 운수가 좋고, 노력해서 공을 쌓은 사람에게 상을 주면 복을 빌지 않아도 복이 찾아온다.
당나라 덕종 때 함양성에 사는 어떤 사람이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전국시대 때 진秦나라의 대장이었던 백기를 보았는데, 그가 말하길 토번이 4월에 쳐들어오니 변경을 잘 수비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래지 않아 토번이 정말로 쳐들어왔다. 토번을 물리친 뒤에 함양 사람의 말을 떠올린 덕종은 정말로 백기의 영혼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성에 백기를 위한 사당을 짓고 백기를 사도司徒에 봉하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모사인 이비가 말했다.
“국가를 흥성하게 하려면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지금 장수들이 공을 세웠는데 백기에게 상을 내리시면 변경에 있는 장수들의 사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을 제대로 주시지 않으면 앞으로 누가 폐하를 위해서 싸우겠습니까? 또한 경성에 사당을 짓고 복을 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면 무속이 성행하고 민심이 현혹될 것입니다.”
당덕종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이비가 말했다.
“두우에 백기의 옛날 사당이 있습니다. 두우에 있는 옛 사당을 새로 수리하면 성의를 표현하면서도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덕종은 이비의 의견을 좋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3장. 용인권_사람을 쓰는 것에 관하여 : 113~114쪽]
人心有所?測, 知人機者, 危矣. 故知微者宜善藏之.
사람의 마음은 예측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종종 위험에 처한다. 따라서 아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문제를 아는 사람은 마땅히 잘 숨겨야 한다.
제나라의 대신인 습사미?斯彌는 전성자를 찾았다. 전성자는 습사미와 높은 대에 올라 풍경을 감상했다.
대는 웅장하고 컸다. 사방을 둘러보면 삼면이 탁 트여서 한눈에 경치가 들어왔지만 남쪽은 나무들에 가려졌는데, 알고 보니 습사미의 집에 있는 나무였다.
“어떤가? 경치가 좋지 않은가?”
전성자는 미소를 지으며 습사미에게 물었다.
“그러게요. 경치가 매우 좋습니다.”
습사미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집에 돌아간 뒤 습사미는 하인을 불러 당장 나무를 베라고 시켰다.
그러자 시첩이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집에 들어오시자마자 나무를 베라니요.”
습사미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아니다. 베지 마라.”
시첩이 물었다.
“조금 전에는 베라고 하셨다가 지금은 베지 말라고 하시다니,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하세요?”
습사미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당신이 알 리가 없지. 옛말에 깊은 못에 사는 물고기의 이름을 아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소. 전성자가 하려는 일은 실로 엄청난 일이라서 내가 그의 작은 생각마저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면 죽음의 화를 당할 것이요. 나무를 베지 않는 것은 큰 실수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은 큰일이요.” [5장. 피화권_화를 피하는 것에 관하여 : 194~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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