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자식아, 니가 아무리 그렇게 됐다 그래두 그렇지, 집에서까지 꼭 그렇게 홀딱 벗고 돌아다녀야 되겠냐!”
나는 깜짝 놀라 내려다보았다.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만져보니 손가락질 받을 차림새는 아니었다. 추리닝 바지에 면 티셔츠, 거기에 이례적으로 양말까지 신고 있었고, 심지어 팬티는 두 개나 입고 있었다. 안 보여서 입은 줄 모르고 덧입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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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수용의 제2기, 분노의 단계가 시작됐을 땐 하필 선거철이었다. 나는 후보자들이 번갈아가며 방송트럭을 골목까지 끌고 들어와 빽빽 떠들어대는 것에 화가 났고, 어떤 후보자의 공약에도 투명인간에 대한 정책이 없다는 것에 화가 났고, 그런 쓰잘 데 없는 생각을 하는 내게 화가 났고, 내가 다가가자 트럭이 떠난 것에 화가 났다. 사람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길거리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에 화가 났고, 어깨띠들이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찌라시를 돌리는 것에 화가 났고, 바로 곁으로 다가가도 내게는 찌라시를 건네지 않는 것에 화가 났고, 어깨띠들에 아버지가 끼어 있다는 것에 화가 났고, 그날 저녁반찬으로 한우 불고기가 오른 것에 화가 났고, 그게 너무 맛있어서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는 것에 화가 났다. 우리 아파트 담벼락을 어지럽히는 선거 포스터에 화가 났고, 거기 적힌 후보자들의 좋은 일이란 좋은 일은 안 해본 거 없다는 식의 가짜 약력에 화가 났고, 조작된 약력을 부러워하는 내게 더 화가 났고, 특히나 별로 잘나지도 않은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뽑아준 인쇄소에 화가 났고, 뻔뻔하게 그걸 갖다 붙인 후보자들에 화가 났고, 셀카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는 내 현실에 무지무지 화가 났다. 그리고 투표 당일 신분을 증명할 길이 없어 투표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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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해진 후에도 나는 가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곤 했는데 이전과는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랐다. 내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누군가가 “야, 무슨 라디오를 듣는 거 같애.”, “채널도 바꿀 수 있냐?”, “노래도 한 곡 틀지?” 실없는 농담들이 쏟아졌다. 거기까지는 똑같았다. 다만 대화의 방향이 한 방향이었다. 도무지 썰렁하다고 투덜대는 놈이 없었다. 내가 “자식들아, 듣는 라디오 상처받는다.”라고 하자 또 다들 “맞아, 너무했어.”, “그래, 상처받겠다, 쟤.”, “라디오가 뭐냐, 라디오가.” 대화는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달려갔다.
그뿐인가? 내가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나도 아무도 내 뒷담화를 하지 않았다. 뒷담화만이 아니라 아예 한기가 느껴질 만큼 어색해져서 아무도 입들을 안 열었다.
--- p.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