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굽이 이렇게 문드러지도록 나는 모르고 지냈구나'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이건 당바닥에 닿은 자국이 아니에요' '뭐라고?'
'이건 내갸 스스로 나를 깎아낸 자국인걸요' '네가 스스로 네 몸을.....' '주인님을 히해하기 위해서 내게도 시간이 필요했던거죠. 나를 깎아내는 시간 말이에요. 주인님이 나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요.'
--- p.24
'내가 제일 높은 곳에 다다랐어!'
금방 돌무더기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앉은 돌맹이가 소리쳤다. 아직도 돌탑이라고 이름 부를 수조차 없는 그저 밋밋한 돌무더기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놓은 곳을 차지했다는 생각으로 돌메이는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발 아래 깔린 돌멩이들이 너무나도 우습게 보였다.
'나를 깔보는 존재는 이제 없어. 모든 돌맹이들이 지금부터 나를 우러러 볼 거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으니 ,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 된거야. '
이렇게 큰 소리를 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바로 옆에는 느티나무가 한그루 서 있었다. 오랜 예날부터 마을을 지켜온 늙은 느티나무의 밑동 부근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시간이 통과한 자리라는 뜻이었다. 느티나무는 비록 늙었지만 가지 끝마다 푸른 잎들을 무성하게 달고 있었고, 그 잎들은 땅바닥에다 넉넉하게 그들을 드리우고 있었다.
돌무더기의 맨 위에 올라앉은 돌멩이는 금세 기가 죽지 않을 수 없었다. 늙은 느티나무에 비해 그가 올라선 자리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경솔함을 알아차린 순간, 또 하나의 돌멩이가 돌무더기의 맨 꼭대기에 올라 앉았다.
--- p.108-109
'내 손으로 지구를 약간만이라도 움직이게 할 수 만 있다면!....' 소년은 마당가에 단단하게 박힌 돌덩이 하나를 가까스로 빼내는 데 성공했다. 요강만한 돌덩이였다. 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그 돌덩이를 안아 들어올렸다. 그런데 정작 기우뚱거릴 줄 알았던 지구는 꿈쩍도 하지않았고, 소년의 몸이 큰 돌덩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소년은 비척거리다가는 그만 땅바닥에 털썩 힘없이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소년은 한약방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왜 지구가 꿈쩍도 않는 거죠?'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지구를 움직여보겠다는 네 생각이 참으로 기특하구나. 그런데 얘야, 이런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니? 네가 지구를 움직이겠다고 돌멩이를 하나 집어들었을 때, 지구 반대편엣는 누군가가 손에 들었던 돌멩이를 하나 땅에 내려놓고 있었을지도 모르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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