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목소리는 언제나 문인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예컨대 오염은 자연을 정복하고자 했던 기술ㆍ공업ㆍ근대문명의 과도함이 초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을 생태학적인 연관으로 파악할 수 없었던 기술적 인식의 결핍에 지나지 않는다. 오염이라는 문제는 자연이 여전히 성가신 상대라는 것, ‘그것에 순종하는 것 외에는 달리 지배할 방법이 없다’(베이컨)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나 훨씬 더 성가신 문제는 내적인 자연, 모럴리스트가 일찍이 정념(패션)이라 부른 것이다. 호퍼는 “인간 내면에는 원시적이며 질척한 진흙 덩어리 같은 것이 항상 존재하고 있는데, 그것을 가공함으로써야 인간은 인간적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외적인 자연에 대해 취약할 뿐만 아니라 내적인 자연에 대해서는 더욱 취약하다. 게다가 인간은 그 점에 관해서는 아직 그 어떤 기술다운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문인의 발상은 결국에는 정념에 먹혀버린 정신적 미개화, 즉 ‘자연의 회복’으로 귀결하지 않을 수 없다.
문인의 자연관 그 자체에는 물론 필연성이 있다. 위험한 것은 그것이 사상적인 규범으로 내세워질 때이다. 예컨대 오늘날의 래디컬리즘이 하나의 이론적 근거로 삼는 마르크스의 〈경제학ㆍ철학 초고〉를 떠올려 봐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포이어바흐의 자연=인간관에 기초해 있고, 마르크스는 머지않아 그것을 조소하면서 내던져버린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그는 포이어바흐의 문인적 자연관을 부정한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자연’을 규범으로 삼은 사고는 결국 자연과 직접 마주 대한 장소와 비교하면, 그리고 거기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한 상태에서 행해진 사고와 비교하면 의사적[pseudo, 사이비]인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p.279-280 「사카구치 안고의 〈일본 문화 사관〉에 대하여」 중에서
제가 「〈일본 문화 사관〉론」(1975)을 쓴 것은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을 쓴 뒤였습니다. 그 사이의 경위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 하나는 그때 ‘사카구치 안고 그 가능성의 중심’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을 쓰고 난 뒤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가능성의 중심’이라는 것을 마르크스보다도 안고와 먼저 관련짓고 있었습니다.
‘가능성의 중심’이라는 말은 폴 발레리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방법서설〉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경험적으로는 다빈치의 작품으로 존재할 리가 없지만, 이른바 가능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다빈치’라고 부른다, 혹은 ‘다빈치 가능성의 중심’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안고와 관련하여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고자 했던 것은 안고 자신이 ‘가능성의 문학’을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연주의적 리얼리즘만이 아니라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모든 형태가 ‘리얼’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생겨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또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도 안고의 표현으로는 ‘리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고를 읽는 행위 또한 그의 작품이나 전기적인 사실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기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으로서의 ‘리얼’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pp.339-340 「사카구치 안고 그 가능성의 중심」 중에서
어떤 사물의 기원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그것이 끝날 때이다. 30년 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썼을 때 나는 일본근대문학의 종언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문학의 종언은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문학의 가능성을 품은 것이었다. 실제로 근대문학의 지배적 형태로부터 배제된 것처럼 보이는 형식의 소설이 여럿 등장했던 것이다. 이름을 거론하자면, 나카가미 겐지, 쓰시마 유코,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다카하시 겐이치로 등이다. 그들은 포스트모던이라 불렸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나에게 그것은 소세키가 근거를 부여하려고 했던 타입의 문학 재생(르네상스)으로 보였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르네상스적 문학의 회복이었다. 그러한 동시대 문학의 동향을 보면서 나는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썼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그와 같은 문학은 급격히 쇠락하고 지적 임팩트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에서 나카가미 겐지의 죽음(1992년)은 총체로서의 근대문학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다른 가능성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끝이었다. 물론 문학은 계속될 것이고 번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은 아니다. 실제로 나는 문학과 인연을 끊어버렸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나는 흥미가 없는 일은 하지 않는 주의다.
--- pp.418-419 「문학의 쇠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