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직업
흔히 21세기를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부른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이 인류 사회의 모습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AI를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미래의 직업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4차 산업혁명이 더 진전되더라도 AI가 인간적인 경험이 중시되는 영역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리학은 인간적인 경험을 다루는 대표적인 학문이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자가 AI로 대체될 수 없는 일을 하는 대표적인 직업으로 손꼽히는 비결이다. 만약 심리학자가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대표적인 직업이라는 점이 의아하게 생각된다면,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일이 청소년 여러분의 인생에서 탁월한 선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심리학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청소년들에게
심리학은 인문학,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종합 학문이다. 다시 말해서,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관한 종합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심리학자들이 일반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잘 알고 있는 영역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 해답으로는 대표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마인드버그(mindbugs) 문제에 관해 심리학자들은 잘 알고 있다. 이따금 컴퓨터 시스템 혹은 프로그램은 예상치 못한 잘못된 결과를 산출할 때가 있다. 이를 ‘컴퓨터버그(computerbugs)’라고 부른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도 이러한 오류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마인드버그다. 마인드버그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오작동, 실수, 착각, 결함, 오류 등을 뜻하는 것으로, 마음과 행동의 기능, 구조, 설계 등에 관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둘째,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어디에서 오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사람들이 삶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심리학자들은 잘 알고 있다.
--- 「1-3 심리학에 대한 오해와 진실」 중에서
여러분이 화창한 봄날에 동물원 나들이를 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에서 탈출한 곰이 멀리서 달려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보통 사람들은 곰을 발견한 순간 공포를 느끼고, 그 결과 심장이 빠르게 뛰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윌리엄 제임스는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그는 사람이 곰을 보면 심장이 먼저 뛰고 그다음에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신체의 변화에 대한 느낌이 바로 정서가 된다. 비슷한 시기에 덴마크의 생리학자 칼 랑게가 같은 주장을 해서 이러한 관점을 ‘제임스-랑게 이론’이라고 부른다. 제임스-랑게 이론을 지지하는 증거 중 하나로 안면 피드백 가설 실험을 들 수 있다. 이 실험에서는 연구참여자들 중 한 집단에게는 웃는 것과 유사한 표정이 되도록 펜을 위와 아래 치아 사이에 물고 있도록 했다. 그리고 나머지 집단에게는 찡그린 표정과 비슷한 표정이 되도록 펜을 코와 윗입술 사이 인중 부분에 걸치고 있도록 했다. 그 후 이들에게 동일한 만화를 보여주고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평가하게 했다. 그 결과,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 집단이 찡그린 표정을 지었던 집단보다 만화를 더 재미있다고 평가했다. 단순히 얼굴 표정을 바꾼 것만으로도 정서가 변한 것이다.
- 〈2-4 삶의 중요한 순간을 채색하는 정서」 중에서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어린 시절에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가 어렸을 때 집안 분위기는 매우 엄격하고 종교적이었다. 그가 자서전에 기록한 바에 따르면, 그와 형제들은 스트레스가 소화기관의 궤양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가족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래서 한때 그는 자신이 혹시 양자가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심리학자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칼 로저스는 사람이 사랑받고 자랐을 때의 모습과 그렇지 않았을 때의 차이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 중요한 차이 중 하나가 바로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는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사람은 자율적으로 생활하지 못하고 타인의 기대에 영향을 크게 받으며 눈치를 보게 되어 결과적으로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지 못하게 된다. 칼 로저스는 개인이 타고난 잠재력을 온전하게 실현할 수 있는 조건으로 다음의 3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공감이다. 둘째, 진실성이다. 셋째,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존중이다. 그에 따르면, 이 세 덕목은 우리의 삶이 점화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에 해당된다. 다만, 이 3가지는 각각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어떤 때는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 〈3-3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 중에서
인간의 내면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다. 하지만 ‘집-나무-사람 검사(House-Tree-Person Test; HTP Test)’는 보이지 않는 내 마음속 모습을 일종의 자화상처럼 보여줄 수 있다. 집, 나무, 사람은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는 친숙한 대상으로, 한 개인의 내면의 모습을 드러내줄 수 있는 상징적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림은 비언어적 언어로, 우리가 내면의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HTP 검사를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준비물로 B5 용지 4장과 연필, 지우개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A4 용지를 주로 사용하지만, HTP 검사를 처음 개발한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존 벅
(John Buck)은 오늘날의 B5 용지 크기에 해당되는 용지를 사용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사전에 용지의 방향(가로 혹은 세로)을 반드시 확인하기 바란다. 또 그림을 그릴 때마다 시간이 어느 정도 걸렸는지를 기록해 두기 바란다.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필요하면 지우개를 사용해서 그림을 수정해도 된다. 첫 번째 그림으로는 B5 용지를 ‘가로’ 방향이 되도록 둔 상태에서 ‘집’을 그린다. 두 번째 그림으로는 B5 용지를 ‘세로’ 방향이 되도록 둔 상태에서 ‘나무’를 그린다. 세 번째 그림으로는 B5 용지를 ‘세로’ 방향이 되도록 둔 상태에서 ‘사람’을 그린다. 마지막으로, B5 용지를 ‘세로’ 방향이 되도록 둔 상태에서 앞에서 그린 사람과 ‘반대되는 성에 해당되는 사람’을 그린다. 예를 들어, 앞에서 여자를 그렸으면 이번에는 남자를 그리는 것이다.
--- 「3-5 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심리검사」 중에서
멀쩡한 사과도 일단 ‘썩은 상자’에 담기면 빠른 속도로 ‘썩은 사과’로 변한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도 ‘썩은 상자’로 표현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에 처하면 ‘썩은 사과’처럼 변할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스탠퍼드 대학교 명예교수인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 이하 SPE)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나쁜 상황과 나쁜 시스템하에서 악행에 물들어가는 것을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라고 불렀다. SPE 참여자들은 실험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썩은 사과’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SPE는 나쁜 상황과 나쁜 시스템이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병리적으로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SPE는 학교 폭력 문제를 비롯하여 한국에서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무기력감과 우울감의 일부가 청소년들이 직면한 나쁜 상황과 나쁜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 「4-4 누구나 비합리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중에서
적응에 심각한 어려움을 일으키는 이상행동을 ‘심리적 장애(psychological disorder)’라고 한다. 흔히 ‘정신장애’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상행동을 다루는 대표적 학문 분야로는 심리학과 정신의학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심리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이 진로와 관련해서 흔히 하는 질문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차이가 무엇인가?’다.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 전반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반면에 정신의학은 주로 정신장애의 예방과 진단, 그리고 치료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기본적으로 임상심리학과 상담심리학, 그리고 정신의학은 모두 정신건강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따라서 임상심리학자, 상담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는 모두 정신건강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정신건강의 증진과 더불어 정신장애의 예방과 진단, 치료를 위해 노력한다.
--- 「5-1 문제행동과 이상행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