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서 누군가를 만지고 싶다는 건 바보 같은 소리다.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착실히 관계를 쌓아가면서, 애무는 천천히, 다정하게, 정성껏, 동시에 에로틱하게, 상대의 반응을 섬세히 살피면서 해야 하는 것이다. --- p.53
나는 스스로 섹스도 서툴고 사교적인 면에서도 서툴다고 생각한다. 유리를 만족시키고 있는 건지 어떤지 지금도 자신이 없다. 대화를 하면서도 유리가 재미있어 하는지, 따분해하진 않는지 언제나 신경이 쓰인다. 그런 나에게, 섹스를 하면서 유리가 말한다. “본인이 즐거우면 상대도 즐거울 거라고 믿어! 그림이랑 똑같이!”--- p.55
사랑이 아니라 집착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타오르는 불은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태우지 말고 그저 조용히 잘 지낼 수는 없을까, 하고 바래본다. 그러나 심장이 불타오르고 있지 않다면 살아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정이라고도 사랑이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는, 유리에 대한 애틋함이 나를 몰아붙였다. 이유도 모른 채 열정적이었다.--- p.56
“잘 먹고 갑니다.”
하고 문을 닫은 순간, 나는 웃겨서 죽을 지경이었다. 웃는 얼굴로 역까지 걸었다. 역까지는 20분 정도 걸렸는데, 그사이에도 몇 번이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는 사람들. 나는 이노구마 씨에게 호감을 가지고 말았다. .--- p.81
말은 아무것도 전하지 못한다.
단지 온도만이 전해진다.
나는 유리의 낮은 온도를 느꼈다.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싹오싹 전해져왔다.
그것이 유리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p.102
혹시라도 신이 잠자리에 든 인간들을 굽어살피다, 누군가 흔해빠진 행동으로 자기에 취해 있는 것을 본다 해도, 나름대로는 진지하게 하고 있는 중일 테니까, 웃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