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라는 말은 〈먹거리X파일〉을 상징하는 ‘카피(copy)’이기도 하고, 제작진의 ‘의지’를 간접적으로 피력한 것이기도 합니다. 방송에 소개되는 유해 식품들 중에는 정말 사람이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양잿물 해삼, 조미료 육수 냉면, 병든 돼지 바비큐, MSG 범벅 짜장면 등 그 정체를 알고서는 참 먹기 힘든 것들입니다. 방송 중에 인공조미료인 MSG를 한 스푼 입에 털어 넣은 적이 있는데, 그 맛은 지금도 떠올리기 싫을 만큼 역겨웠습니다. 인공조미료는 자연에서 추출한 맛일 뿐 자연의 맛은 아닙니다.
이렇게 소비자를 대신해 눈으로 살펴보고,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져보고, 직접 먹어보는 등의 수고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유해 식품이 가공되는 중국 현지에 출장을 가는 일도, 여러 식당을 돌아다니며 같은 음식을 예닐곱 번 먹는 일도, 착한 식당 주인공을 검증하기 위해 밤새 식당 근처에서 잠복하는 일도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끈질긴 취재로 물증을 확보한 후 경찰과 함께 유해 식품 가공 현장을 덮친 일도 있었습니다. ‘저 음식은 먹을 만할까?’ 하는 시청자의 소소한 궁금증을 푸는 것부터 먹거리에 관한 한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입니다. “저희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프롤로그」
손칼국수 거리의 식당들은 칼국수 면을 공장에서 납품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직접 칼국수 면발을 반죽한다는 이웃 식당에 대해서 이렇게 귀띔했다.
“집에서 한다고 하는데, 그 면을 갖다가 꼬불꼬불하게 손으로 쥐어서 집에서 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예요.” 즉, 공장에서 만든 칼국수 면을 직접 손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 위해 다시 손질을 한다는 얘기였다.
다음날 아침, 다시 처음의 손칼국숫집을 찾았다. 식당 주인은 홍두깨로 매끈한 면발을 눌러 얇게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원래의 면발과 비교해보니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좀 더 지켜봤지만 반죽을 밀거나 칼로 써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식당 한 귀퉁이에서 다른 식당 주인이 보여준 면제품 포장지, 공장과 거래한 전표를 찾을 수 있었다. ---p.24
이렇게 반죽이 손에 익기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반죽이 잘 되지 않아 국수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뚝뚝 잘 끊어져 손님들이 숟가락으로 떠먹을 정도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메밀가루를 만질 때마다 겸손해진다고 한다.
메밀은 금방 굳고 부서지기 때문에 메밀국수의 맛은 속도가 좌우한다. 반죽에서 손님상에 오르기까지 15분을 채 넘기지 않기 위해 이철순 씨는 반죽을 마치자마자 제면기(면 뽑는 기계)에 반죽을 넣는다.
슬슬 면이 나오면 설설 끓고 있는 가마솥으로 직행한다. 메밀국수의 면은 최소 10배 이상의 충분한 물에 빨리 삶아내야 맛과 영양을 잃지 않는다. 가마솥 앞을 지키고 있다가 다 됐다 싶으면 냉큼 채반에 거둬 찬물로 헹군다. 행여 가마솥에 남은 면발이 있을까 봐 한 번 더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얀 메밀가루에서 순메밀면으로 변신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여 분.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면을 뽑고 삶아내기 위해 이철순 씨는 아침부터 가마솥에 불을 지폈다. 매일 아침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위해 그날 쓸 장작을 패고 불을 피워 가마솥의 물을 데운다. ---p.56
박대수 씨는 인간과 공생관계인 닭의 존엄성을 헤아리듯, 농장의 닭들에게 늘 깍듯한 모습이었다. 평사 안에는 닭들이 안락하게 산란하도록 별도의 나무 상자를 마련해놓았는데, 박대수 씨는 이 산란 장소로 달걀을 가지러 갈 때면 어김없이 나무 상자의 뚜껑을 똑똑 두드렸다.
“미안, 미안, 알 꺼내 간다. 미안, 미안.”
상자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닭들이 최대한 안심할 수 있도록 노크를 했다. 일종의 교감 신호다.
닭을 배려하는 박대수 씨의 마음은 사료 준비를 할 때에도 남다르다. 박대수 씨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대량 사료가 아니라 직접 만든 자가 사료를 먹이고 있다. 사료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만 해도 10가지, 모두 국내산을 사용한다. 여름철 우기에는 닭이 지칠 수 있기 때문에 당귀, 계피, 감초, 생강, 마늘 등과 같은 한방 재료를 활용한 효소를 먹이기도 한다. 박대수 씨가 직접 만든 쇠비듬 효소는 사람이 먹어도 될 정도라고. ---p.103
기름 역시 잠행 검증이 이루어졌다. 일주일 치 기름 여섯 통을 배달하고, 하루 동안 쓴 폐유 세 통을 수거해 가는 폐유업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수치가 다른 것은, 튀김을 만드는 동안 기름이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름 한 통을 부으면 폐유는 절반 정도 나온다.
“제가 다녀보면 튀김집에서는 폐유가 안 나와요. 그냥 없어질 때까지 쓰는 집도 많아요. 튀김집에서 이 정도 폐유가 나온다는 건 그만큼 깨끗하다는 겁니다.”
폐유의 산가를 측정해보았다. 측정 용지를 담갔다 빼보니 산가는 기준치인 2.5보다 낮은 1.5였다. 다른 분식집에서 며칠 쓰고도 남을 기름이 이 집에서는 폐유로 처리되고 있는 셈이다.
더 이상 추가 검증은 없어도 될 듯했다. 신선한 기름으로 건강한 튀김을 만드는 착한 식당 ‘요요미’를 찾은 순간이었다. ---p.138
“맛을 내려면 냉면 다시다 같은 조미료를 넣어야 해요. 냉면 육수에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요. 25킬로그램짜리 포대를 한 다라이에 들이부어야죠. 냉면 육수 맛은 조미료 맛이에요.”
그뿐 아니었다. 인터넷에서는 돈을 받고 냉면 육수 비법을 전수해준다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에게서 육수 비법을 배워보기로 했다.
전수자는 육수 재료로 쓸 통마늘 2킬로그램, 생강 1킬로그램, 소고기 맛 조미료(2킬로그램) 2봉, MSG 조미료(3킬로그램) 1봉을 구입해 오라고 일러주었다. 사골이나 고기를 사 오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경기도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육수 전수자는 작은 병 하나를 꺼내 맛을 보라고 내밀었다. 맛은 우리가 흔히 먹는 냉면 국물 맛이었고 심지어 맛있기까지 했다. 전수자는 우리가 준비한 재료만으로 만들 수 있는 육수 농축액이라고 했다. 이 농축액을 사용하면 냉면 한 그릇의 육수 원가는 단돈 50원. 놀랄 만한 원가 절감이었다. (중략)
인터넷에서 만난 또 다른 전수자는 칡냉면 가맹점을 운영한 적이 있는데, 그때 4천만 원을 주고 육수 비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제는 50만 원을 받고 조미료 육수 비법을 전수하는데, 재료나 만드는 방법이 처음 만났던 전수자의 것보다 훨씬 간단했다. 소고기 맛 조미료에 설탕, 식초만 있으면 되는 육수. 커다란 들통에 소고기 맛 조미료 1,150그램, 설탕 1,800그램을 넣고 끓인 다음, 식힌 후에 식초 한 바가지만 부으면 끝난다. ---p.194
추어탕의 맛도 훌륭했지만 상에 올라오는 반찬들의 재료가 모두 국내산이었다. 산지에서 직접 가지고 온다고 했다. 심지어 고춧가루도 시골에서 농약을 치지 않고 재배한 것을 가져다 쓴다. 추어탕의 주재료인 미꾸라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자연산 미꾸라지에, 미꾸라지보다 맛이 더 담백하고 좋다는 자연산 미꾸리, 이른바 ‘동글이’를 쓰고 있었다. (중략)
불가능한 미션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남동생 정청애 씨의 손에 달려 있었다. 남동생이 직접 자연산 미꾸리를 잡아 식당에 재료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해온 일이라 물 색깔만 봐도 미꾸리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전문가다. 미꾸리는 2급수 이상 깨끗한 물에 살기 때문에 논이 아닌 오염되지 않은 습지에 미리 통발을 쳐놓고 잡는다. 남동생이 직접 잡은 자연산이기 때문에 누나인 정영자 씨는 마음 편히 믿고 손님들에게 추어탕을 대접한다.
물론 미꾸리나 미꾸라지가 잘 잡히지 않을 때도 있다. 자연산이 없으면 식당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이 정영자 씨 내외의 철칙이기 때문에, 저녁이면 재료가 없다는 말에 발길을 돌리는 손님도 부지기수다.
---p.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