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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슬퍼하겠습니다
중고도서

나 혼자 슬퍼하겠습니다

: 깊은 절망과 더 높은 희망

정경심 | 보리 | 2023년 11월 2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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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412g | 140*210*20mm
ISBN13 9791163143376
ISBN10 1163143375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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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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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갖지 못한 많은 것을
가지셨더군요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보통 사람들과 같아지라고 많은 고난을
주셨나 봅니다
함께하는 이가 많아요
우리가 함께 앉아 당신의 고통을 조금씩
나눠 보겠다고 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해
아플 뿐입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깁니다
하느님이 깊이 사랑하지 않고서야
이게 가능한 일이기나 한가요.
---「수녀님의 편지」중에서

시멘트 벽과 바닥 사이의 작은 틈을 뚫고
뿌리는 바깥에 줄기는 안으로 뻗은
한 길이나 됨직한 풀이 당당히 하얀 꽃을 피우며
지나가는 이를 흠칫 멈추게 한다

나는 이 녀석이 머리를 들이밀고
잎사귀를 서너 개 붙였을 때부터 보아 왔거늘
당당하게 높이 뻗은 꽃대를 보며
오늘 새로이 경탄한다

너의 의지와 기상이 가상해
너를 잡초라 부르며 감히
뽑아내지 못하네
너를 본 그 누구도.
---「면회 가는 길」중에서

여보
오늘 밤은 각자의 슬픔을
슬퍼합시다
내 슬픔이 너무 커서
당신 슬픔도 너무 클 것을 알기에
오늘 밤은 나 혼자 슬퍼하겠습니다
당신도 슬픔에 겨워 어쩔 줄 모를 테니까요

여보
우리가 오늘 밤
큰 슬픔을 슬퍼하며
홀로이 그 슬픔을 이겨 냈음을
잊지 맙시다
당신과 나보다 더 아픈 마음이
오늘 밤엔 없었음을 기억합시다.
---「오늘 밤」중에서

운동장 한쪽 구석
언제나 그늘이 지는 곳
그곳에서 너를 보았다
해를 향해 부실한 줄기를 길게 뻗고
노오란 꽃잎을 겨우 펼쳐 낸
너의 굳은 의지를 보고 놀라웠구나
생명인 빛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한 그곳에서
너의 존재를
너의 꽃다움을 말없이 펼쳐 보인
너를 보고 숨을 죽였구나
왠지 모를 승리를 본 것 같아서
한참을 서서 위로받았구나.
---「그늘에 핀 꽃」중에서

영치금 계좌를 오랫동안 봉인했다
또 어떤 비난이 내게 향할지 상상할 수 없었기에
2022년 삼월 감옥 생활 이 년을 넘기고서야 공개하기로 했다
친구와 지인들이 이제는 공개해 달라고 하여
이제는 아무도 관심 없을 것이라고 하여
그런데 어떻게 알았을까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이 봇물 터지듯 영치금을 넣기 시작했다
한 뭉치의 입금 통지서를 받아들고 처음에는 어리둥절
3원이 찍힌 입금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직전 잔액이 2,999,997원
한도액 300만 원에 걸린 그이는 수없는 시도 끝에
마침내 3원의 공간을 확보하였던 것
그 3원이 급기야 나를 울리고 말았다
목을 놓아 펑펑 울었다
그이의 간절한 사랑이 차갑게 얼어붙은 내 마음을 녹였다
하지만 그것은 길고 긴 송금 행렬의 시작이었을 뿐
가끔은 18원을 보내서 욕을 한 이도 있었지만
아주 가끔은 넉넉한 한도에도 1원으로 비웃음을 보낸 이도 있었지만
빠듯한 용돈을 아껴 매주 1004원을 보내 준 분
격려의 메시지를 적어 넣느라 늘 익명을 고수한 분
매월 월급날마다 적금 붓듯 소액을 입금한 분
입금 공간을 내어 주려고 번거로운 우편환을 마다하지 않은 분
얼굴 없는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에게서
나는 참으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많은 분이 십시일반 보내 주신 그 뜻을 헤아려
2022년 그해 겨울 엄동설한에 수술 후 아픈 몸으로 재입감 되며
처음으로 극세사 이불을 장만하여 그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다
그리고 다음 해 봄 처음으로 선크림을 사서 얼굴에 발랐다
그리고 처음으로 얼굴에 바르는 크림도 샀고 탈모 약도 샀다
그리고 과일과 육포와 초콜릿도 사서 뿌듯하게 쟁여 두었다
문득 영치금 계좌 공개 전에 마음을 보낸 이들 생각이 났다
공개 전이므로 영치금이 내게 닿을 유일한 방도는 우편환이었다
여러 분이 보내 주셨지만 모두 되돌려 보냈다
그리고 한 분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강동구에서 날아든 편지 한 통
자신을 은퇴 목사라고 호칭하셨다
처음에 10만 원을 보내셨는데 돌려보내자 20만 원을 보내셨다
또다시 돌려보내고 반환하는 이유를 적어 보낼 수밖에
은퇴하여 살날이 많지 않은데 뭐가 두렵겠냐며 또 보내셨다
결국 나는 결례지만 수신 거부를 요청하였다
그분의 정갈한 글씨와 격려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받지 못했던 죄송함이 아리게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이렇게 한 분 한 분의 사랑이 모여 내 삶을 지탱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말씀드렸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힘을 내서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지키겠습니다.
---「나를 울린 영치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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