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커다란 로봇은 있는 힘을 다해 다시 일어섰다. 망가진 팔이 힘없이 축 늘어졌을 땐 안쪽 어딘가 깊은 곳에서 삐걱거리고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쩌지…….” 나는 얼굴을 깊은 파란색의 슬픔으로 바꾸며 그에게 말했다. 나도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정말 모른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 로봇은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았다. 고철의 목에서 철가루가 조금 흩날렸다. 나는 놀라 뒤로 물러섰다. 눈 속의 커다란 전구 속에는 무언가 있었다. 이곳의 다른 로봇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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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강 장치의 구부러진 곳까지 다가와 모습을 드러낸 제거 로봇과 우리를 잘게 썰어 파괴하려는 칼날의 흐릿한 형체에 내 전등 빛을 비추었다. 커다란 로봇은 마침내 내려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우리는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리저리 ‘휙휙’ 도느라 하강 장치 안에 얼굴이 닿았고 등도 닿았다. 그러다 결국, 다행히, 장치 끝으로 빠져나와 수북이 쌓인 녹가루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나는 벌떡 일어나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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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러스티가 그 특유의 덜걱거리는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새는 놀라 푸드덕 날아갔고, 떨어진 깃털이 러스티의 얼굴을 가로질러 둥둥 떠갔다. “나는 한 가지 일만 하도록 만들어졌어. 다른 로봇들도 역시 그래. 모두 나르고, 들어 올리고, 운반하는 일만 하도록, 튼튼하게. 나는 튼튼하지 않았어. 공장의 실수였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팔이 고장 나 있었거든. 나는 불합격품이라 쓸모가 없었어. 그래서 그 검사소로 보내진 거야. 바로 그 의자로 말이야.”
가슴에서 전기가 통했다. 러스티는 이 모든 것을 일어난 그대로 말했다. 덧붙이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딱 그대로. 하지만 나는 달리 받아들였다. 러스티의 삶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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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뻤다. 정말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 망가진 상태야.” 그건 그렇게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러스티가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 “내 마음은 망가졌어. 인간들이 던져 버렸어.”
우리는 모두 가까이 다가갔다. 러스티의 말은 과연 무슨 뜻이었을까?
“그러니까 네 말은, 네 망가진 마음이라는 게 슬퍼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거지?” 베스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러스티가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엿새 전에, 내 몸의 일부가, 안에 있는 게 망가졌어.” “음……. 괜찮다면 내가 안을 좀 들여다봐도 될까?” 베스가 말했다. “학교에서 초급 전자공학 수업을 듣고 있거든. 너처럼 특별한 건 다뤄본 경험이 없긴 하지만…….”
러스티는 고개를 끄덕였고, 베스가 러스티의 가슴에 있는 얇은 뚜껑을 슬며시 누르자 ‘툭’ 하고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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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는 러스티의 가슴에 있는 뚜껑을 조심스레 닫았다. “친구들은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난 알아, 러스티.” “마음이 어디 있는지 난 알 것 같은데.” 노크는 비밀을 공개하는 게 꺼려진다는 듯 발가락으로 바닥을 톡톡 치며 말했다. “네가 도시를 잘 아니까.” 레드가 말했다. “네가 아는 걸 말해줄래? 저 부품 어디서 찾을 수 있니?”
“검사소로 다시 돌아가는 거야?” 게리가 긴장한 듯 물었다. 노크는 조금 더 머뭇거렸다. “거기는 이제 아니야.”
“왜?” 내가 물었다.
“내가 저 중심 밸브를 봤거든. 푸치가 검사소에서부터 계속 씹고 있던 금속 뼈다귀가 정말 비슷하게 생겼어.”
“으르렁.” 푸치가 으르렁거렸다. “으르으으으으지직.”
“정말 잘됐다!” 나는 얼굴에 이런저런 색깔을 마구마구 뿜어대며 말했다. “네가 푸치에게서 그걸 가져오면 우리가 러스티의 가슴에 다시 집어넣을 수 있고, 러스티는 다시 생기를 얻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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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말도 안 된다. 러스티처럼 커다랗고 튼튼한 로봇이, 아무리 몸의 한 부분이 망가졌다고 한들 어떻게 이렇게 사라져 버릴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내가 떨어뜨렸어, 러스티의 마음을. 내가 잘 보지 않았기 때문이야. 분명 차바퀴에 밟혔을 거야. 다 내 잘못이야.”
“자책하지 마, 부트.” 레드가 말했다.
“검사소에 있던 인간들이 러스티를 고쳐줬을 수도 있는데, 내가 의자를 망가뜨리는 바람에 러스티는 어쩔 수 없이 나를 따라온 거야. 그리고 이제 러스티는…… 사라져 버렸고.”
나는 러스티의 망가진 팔을 붙잡고 그의 손을 살펴보았다. 살며시 주먹을 쥐고 있었다. 러스티는 정말 큰 손을 갖고 있었으며 힘도 아주 셌다. 움직이지 않은 채 이곳에 누워 있으면서도 강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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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서랍은 친구를 구한 작은 대가 같았다.
“괜찮아, 생각해줘서 고마워.” 내가 말했다.
“그걸 계속 손에 움켜쥐고 다닐 수는 없을 텐데.” 그 애가 말했다.
나는 손가락을 펼쳐 보았다. 게리가 내게 돌려준 후 나는 줄곧 이 빨간색의 작은 보석을 꽉 쥐고 있었다.
“내게 생각이 있어.” 그 애가 주머니에서 작은 튜브를 하나 꺼내며 말했다. “잠깐 가져가도 돼?”
나는 베스에게 보석을 건넸다. 그 애는 튜브를 짜서 내 가슴에, 정확히 심장이 있을 법한 자리에 풀을 발랐다. 그리고 보석을 눌러 붙인 후 단단히 달라붙을 때까지 잡고 있었다.
“네 용감함에 대한 메달이라고 생각해.” 그 애가 말했다.
낡은 오락실의 불빛 아래에서 보석이 반짝거렸다. 나도 역시 반짝거리는 느낌이었다.
“자, 이제 올라갈 준비가 됐어.” 노크가 제어판의 손잡이를 돌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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