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가면서, 우리는 효율성이 사랑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게끔 길들여진다. 효율성은 삶에서 ‘어떻게’에 관한 문제다.…이와 반대로, 사랑은 삶에서 ‘왜’에 관한 문제다. 도대체 우리가 왜 활동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효율적이기를 원하는지에 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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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일터에 있는 사람들이 직접적인 사랑의 현존을 추구하는 일에 서로 함께할 수 있다면 멋지지 않을까? 그것은 당신의 생각보다 더 가능성 있는 일이다. 많은 일터에 그리고 거의 모든 가정에는 협력할 수 있는, 영적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최소한 어느 정도는 있다. 문제는 그것을 추구하고 계발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신은 마음속의 갈망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표현해야 하며 그것은 거의 언제나 위험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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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구별된 수련을 해 보라. 온전히 바로 지금 여기서 마음을 모아서 한 번에 한 가지만 해 보라. 단지 그것을 끝내고 바로 또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 그것을 하지 말라. 사랑을 위해서 하라. 온전히, 느끼며, 마음을 열고 행하라. 지금 그것을 하라. 그러고 난 후, 다음 일을 하라. 나무를 베고, 물을 긷고, 타이핑을 하고, 편지를 읽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떠들며 웃고, 저녁 준비를 하고, 가계부를 쓰고, 성생활을 하고, 코코아를 마시고, 전화를 받고, 상사에게 불평을 하고, 배수구를 고치고, 여기저기 걸어 다니고, 다음 달의 약속을 잡고 예산을 짜고, 못을 박고 동료의 의견에 반대하고, 전구를 갈아 끼우라.
삶은 이런 식으로 살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매일 하루에 4-5분 정도 그런 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틱낫한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설거지를 하면서, 설거지를 마치고 마실 차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얼른 설거지를 끝내고 자리에 앉아 차 마실 궁리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동안 제대로 자기 삶을 살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할 따름이다."
가정과 일터에서 삶과 사랑의 현존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작고 단순한 장소들을 찾아보라. 그곳은 정원일 수도 있고, 아이들의 눈을 바라볼 때일 수도 있고, 또는 잠시 진정으로 머무는 일터일 때도 있다. 그러한 짧은 순간들이 당신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는가? 그 순간들을 어떻게 키워 갈 수 있는가? 어떤 상처나 부담 또는 과도한 집착이 순간을 질식시키고 공간을 채우는가? 어떤 종류의 치유가 필요한가? 어떤 종류의 기도가 요청되는가?
--- pp.3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