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만을 좋아합니다. 죽음의 어두움을 이미 경험한 푸름 말이에요. 나의 문장이 미소 짓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어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한없이 끌어당기는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습니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 미소를 얻었어요. 당신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금화와 같은 이 하늘의 푸르름을 나는 글을 쓰며 당신에게 돌려드리고 있답니다. 이 장엄한 푸름이 절망의 끝을 알려주며 당신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 p.21
한 부인이 자기 아이가 네 살 때부터 술라주의 그림을 좋아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그 아이와 비슷한 나이 때 술라주는 눈이 내린 풍경을 모두 검게 칠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아이를 이해한다. 어린아이였던 술라주도 이해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설명할 수가 없다. 설명으로는 결코 이해시킬 수 없다. 진정한 깨달음의 빛은 누군가가 결정할 수 없는 내적 분출인 영감에서만 올 수 있는 것이다.
--- p.40
우리는 말을 할 때 바로 그 말속에 머물며, 침묵할 때면 바로 그 침묵 속에 머문다. 하지만 음악을 연주할 때는 그 자리를 정리하고 벗어나, 말과 침묵의 고역에서 해방된 희미한 선율 속으로 멀어져 간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멀어져 가는 한 젊은 남자처럼, 우리도 멀어져 간다. 목적지를 안다면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음악 안에 있다는 건 사랑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연약한 인생의 오솔길에 들어선 것이다. 우리는 A라는 점에서 B라는 점으로, 한쪽 빛에서 다른 쪽 빛으로 건너간다.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며 그사이 어디쯤에 우리가 있다. 불확실함을 견디고 주저함에 미소지으며, 다른 모든 것은 잊은 채로 우리 안의 희미한 생의 움직임에 주의하면서 말이다.
--- p.54
너와 함께 글을 쓴다. 밤과 낮의 단어들, 사랑의 기다림과 사랑의 단어들, 절망과 희망의 단어들. 나는 너와 함께 이 단어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본다. 우리만이 알고 있는 이 깨달음 속에서 글을 쓴다.
--- p.77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 p.81
단 한 편의 시라도 주머니에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읽고, 쓰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삼위일체다.
--- p.84
우리는 죄로 붉게 물든 두 손으로 삶을 헤쳐나간다. 죽음의 홍수가 그 손을 하얗게 하리라.
--- p.116
크리스털 잔이 싱크대에서 깨지고 손가락에 핏방울이 맺힌다. 핏방울. 살갗이라는 하늘에 걸린 빨간 구름, 살아있는 자가 중얼거리는 한 편의 시. 짐승과 구름 그리고 접시는 삶이 주는 커다란 충격을 알고 있다. 그들의 우수, 그들의 흩어짐, 그들의 이가 빠진 테두리가 그것을 증명한다. 나는 쇠똥, 종이로 된 책 그리고 손으로 하는 설거지를 신봉한다. 서투름으로 붉어진, 상처 입은 삶만큼 진실한 것을 본 적이 없다.
--- p.128
우리는 때때로 멀리서부터 요란한 소리를 내지르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그 거대한 검은 파도 위에서 한 걸음 나아가지만, 그러나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골길을 걷고, 책을 펼치고, 장미가 꽃을 피우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무엇이 의미 있는 일이겠는가?
--- p.169
나는 하늘의 푸르름을 바라본다. 문은 없다. 아니면 오래전부터 문은 이미 열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끔 이 푸르름 안에서 꽃의 웃음과 같은 웃음소리를 듣는다. 곧장 나누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그 푸르름을, 당신을 위해 여기 이 책 속에 담는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