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나 사람과 사건이 서사를 끌고 가는 소설인데도 과자와 음식과 술이 또렷하게 보이는 드문 작품이다. 다섯 개의 다른 이야기, 다른 작가인데 마치 미리 합을 맞춘 듯 유연하게 읽힌다. 예사롭지 않은 서양과자로 시작해서 한번 반전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더니, 소다와 다채로운 과실주가 입맛을 훅 당긴다. 어어, 하면서 사케의 늪에 빠졌다가 쓰러질 것 같은 동네 밥집에 발목을 잡힌다. 마지막은 근사한 바텐더가 등장하는 무서운 디테일의 칵테일 이야기가 우리를 흔든다. 서로 다른 성격의 일본 작가들이 맘먹고 드러내는 당대의 일본 사람들이 먹는 방식, 마시는 일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술과 음식의 맛은 선명하며, 매우 구체적이다. 당장이라도 먹고 마시고 싶게 만든다는 뜻이다. 여러분은 이 책에서 무얼 먹고 마시고 싶은지. 나 같은 아저씨들은 역시 ‘자츠’ 같은 다 쓰러져가는 동네밥집에서 돼지고기생강구이에 생맥주를 마시겠지만(‘자츠(雜)’는 책에 등장하는 일본 변두리 동네밥집의 이름이다. 실재하는 것처럼 생생해서 바보처럼 심지어 구글로 검색까지 했다. 물론 없었어요). 음식은 향과 온도가 있어야 하는 실물이다. 하지만 문학은 때론 그 본질을 넘어서는 힘을 갖는 경우도 있다. 글이 더 맛있을 수 있다는 모순이다. 소설가는 정말 위대한 인간들이다. 완벽하게 써 놓아서 요리책의 서술 같은 첫 번째 작품 속의 밤 테린느와 사바랭이나 봉봉, 다섯 번째 작품에 나오는 빛나는 칵테일들은 이 사람들의 높은 미식 수준이랄까, 아니면 작가의 꼼꼼한 취재와 신들린 묘사랄까 부러운 대목이었다. 추천한다.
- 박찬일 (요리사·작가 『노포의 장사법』,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앗. 이런. 지하철에서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데, 점점 취기기 오른다. 5편의 단편마다 각기 다른 술처럼 다른 향, 다른 맛, 다른 빛깔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생을 간직한 비밀스러운 사랑이, 이별 뒤에 새로운 시작이 두려운 사랑이, 벚꽃 날리던 대학교 교정의 싱그러운 사랑이,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사랑이, 그리고 코로나 시기를 보내며 우리 모두가 깨달은 공동체의 사랑까지. 사랑이야기에는 역시 술이 빠질 수가 없지. 중후한 향이 코끝을 감싸고 첫맛은 묵직하지만 쌀의 단맛이 느껴지는 맛있는 준마이주 한잔이, 바나나와 다크 럼, 얼음사탕에 캐러멜 소스를 조금 넣어서 만든 바나나주 한잔이, 브랜디에 생크림, 그리고 벌꿀을 넣어 만든 달콤한 아일라 몰트 한잔이 당장 마시고 싶었다. 술을 사랑하는 나에게 『호로요이의 시간』은 특별한 책이었다. 책 제목 ‘호로요이’라는 의미처럼 우리는 어쩌면 술 한잔 가운데 두고 ‘살짝 취해본다면’ 더 많은 용기를 낼지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도, 이해하는 일도 말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결국 술 한잔을 따르고 말았다.
- 최여정 (작가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 쓰겠다』)
일본의 대표적인 츄하이 브랜드 ‘호로요이’는 살짝 취한다는 뜻이다. 이 책이 그렇다. 읽다보면 살짝 취하는 기분. 낮은 도수에 과실향도 얹어 달큰한 기분으로 한 장, 한 장 읽다보면 평소 생각지 못했던 기억들,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음식이란 것이 그냥 맛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특정 시간의 기억과 함께 오래 각인되듯이 이 책에서 그려지는 기억 혹은 경험은 생생한 음식의 언어, 술의 언어와 함께 여러 감각을 깨운다. 그런 점에서 이 다섯 편의 짧은 소설들은 감각적인 영상미로 주인공들의 감정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왕가위의 영화, 혹은 서툴게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노라 애프런의 영화를 닮았다. 노력하고, 후회하고, 마음을 숨기고, 체념하고, 다시 희망을 품는 우리들의 이야기 말이다.
- 정지원 (제이브랜드 대표 『맥락을 팔아라』 『뉴 그레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