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떠나고 싶었다. 낙엽처럼 바람 부는 데로 정처 없이 떠다니고 싶었다. 여행지의 감흥만을 새기며 목적 없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세상이란 풍경 같은 것은 아닐까 하며 여행지에서 여행지로 그 풍물(風物)만을 응시하며 떠다니고 싶었다.
세상의 방관자가 된 채, 시시각각 다가오는 풍경만을 바라보며 흐르는 풍경에 나를 맡기고 부유하듯 여행지를 넘나들었다. 여행지의 풍경만을 눈에 달고 다니자 하였으나 흐르는 풍경에 몸을 맡길 수만은 없는 모양이다. 풍경 속으로 역사가 넘나들고, 붉은 노을 속으로 인간의 삶이 비켜가기도 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사이로 한 해가 뒷모습을 보이며 빠져나가고, 어김없이 한 해가 도래한다.
광활한 대륙 인도, 다양한 역사적 층위를 이루고 있는 나라, 인도는 어디를 가나 서로 다른 얼굴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수많은 것들이 감정의 괴리를 일으키듯 극단적인 양면성을 드리우고 있어서 수시로 불편함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길 위의 풍경이 그러하였고, 어디를 가나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러하였다. 두 개의 시간이 상치된 채 맞물려 흐르는 것이 그러하였고, 유적지 안과 유적지 밖의 상반된 모습이 그러하였다. 신과 인간, 인간과 동물,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자본과 인간, 부자와 빈자, 계층과 계층, 남성과 여성 등이 오래된 인습처럼 그대로 방치된 채 괴이하게 혼재하였다.
--- pp.4~5
라자스탄은 수많은 왕과 왕국, 용감한 전사 라지푸트들의 고향이다. 왕(라자)들의 땅(스탄)답게 난공불락의 성으로 둘러싸인 자이푸르는 라지푸트족 전사들의 무용담과 그에 얽힌 전설, 아름다운 여성과 용감한 기사에 관한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고장이다. 라지푸트(Rajiput)족은 본래 아리아족으로 5세기 중엽부터 중앙아시아에서 서북부 인도로 침입하여 라자스탄 지방을 중심으로 정주하면서 각지에 여러 왕조를 세운다.
라지푸트족은 8세기부터 12세기까지 북인도 지역을 지배하며 전성기를 누렸으며, 힌두족인 라지푸트의 여러 왕조는 이슬람교도의 침입 후 수세기에 걸쳐 항쟁을 거듭한다. 이렇듯 라자스탄은 이슬람 세력에 항거하면서 힌두계 소왕국들이 서로 경쟁하며 할거하던 땅이다. 그 과정에서 라지푸트족은 무사계급 즉 크샤트리아 후예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왕권과 그 지배의 정당성을 꾀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다 무굴왕조가 번성함에 따라 소왕국들은 세력을 키우지 못하고 무굴왕조에 복속 당하게 된다. 하지만 자이싱 2세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현실주의자로서 냉혹한 정복왕 아우랑제브로부터 제국의 보호를 이끌어낸다. 그런 안정된 기반에서 왕국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자이푸르는 라지푸트족을 중심으로 힌두교도들에 의해 만든 도시로 무굴 양식과 라지푸트의 양식이 혼합된 흔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자이푸르 시내는 ‘핑크 시티(Pink City)’로 불리는 도시답게 어디를 보아도 붉은 빛으로 가득하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인 웨일스 왕자(훗날 에드워드 7세)의 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벽과 건물들을 분홍색으로 칠하면서 ‘핑크 시티’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핑크색이 라지푸트족에게 ‘환대’를 의미하는 것에 착안한 것으로, 도시 곳곳을 장식하는 분홍색은 이제 자이푸르를 상징하는 색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은 핑크 시티라는 시각적 언어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자이푸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 pp.35~36
정원의 물길을 지나 타지마할 뒤편으로 올라서는 순간, 조리개가 열리듯 나의 동공이 열리며 강줄기를 따라 나아간다. 야무나강의 긴 물줄기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끝없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시선은 강물을 따라 자꾸만 나아갔으며, 나의 발걸음은 강줄기를 따라 서성거렸다. 강줄기가 지상에서 가장 커다란 현악기가 되어 유장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완만하게 굽이도는 강줄기를 거슬러 하얀 바람이 불어오고, 바람은 시간의 소리가 되어 허공에서 펄럭인다. 강변의 풍경이 시간의 음표가 되어 아득한 세월 속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 음악이란 강을 따라 태어났을 것이요, 강물의 흐름을 닮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타지마할 난간 위에 서서 바라본 야무나강의 풍경은 깊고 유려한 음률이 되어 내 안에 진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강의 흐름과 강변의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며, 묘당 뒤편으로 돌아 타지마할 묘당 바로 앞에 섰다. 타지마할 입구 외벽 장식부터 반투명 흰 대리석 위에 아름다운 꽃들, 독특한 문양의 조각, 경전 코란 등 각종 문양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타지마할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차가운 대리석 묘당에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창백한 대리석 천장에서 금세 하얀 눈발이라도 흩날릴 것만 같다.
타지마할은 균형 잡힌 완벽한 비례, 돔과 아치로 된 수려한 곡선미, 우아하고 화려한 대리석 장식 등 그 조형미가 극치를 이룬다고 말한다. ‘대리석으로 만든 꿈’이란 별칭을 얻은 타지마할은 묘당의 건물, 기단 벽면 무늬, 대리석 벽면의 상감세공을 비롯하여 모든 게 완벽한 모습이다. 샤자한의 뭄타즈 마할에 대한 사랑처럼 견고하게 구축된 묘당 건물 내부를 돌아본다.
--- pp.89~90
저만큼 강 앞쪽으로 붉은 단이 쌓여있고, 단 위에는 일곱 명의 건장한 사내가 반듯하게 앉아 갠지스 강을 바라보고 있다. 붉은 단 위로 강렬한 불빛이 쏟아져 내린다. 인도인의 영혼의 고향인 갠지스강,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갠지스에서 행하는 의식이다. ‘아르티 뿌자(Arti-Puja)’로 날이 어두워질 때나 날이 밝을 때, 갠지스강 가트에서 사제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신을 부르는 힌두교의 종교의식이다. 신에 대한 찬양이 동반되는 아르티 뿌자는 땅을 대표하는 꽃, 액체를 대표하는 물, 불을 대표하는 램프와 촛불, 바람을 전해주는 공작 부채, 공간을 상징하는 야크의 꼬리를 사용하여 불과 빛을 통해 어둠을 몰아내는 행위로 뿌자를 진행한다.
이처럼 인도인들은 날마다 신에게 꽃과 음식과 향 등을 바치는 의식인 ‘뿌자(Puja)’를 드린다. 갠지스 메인 가트에서 어둠 속에 치루는 대대적인 의식도 뿌자이고, 집안에 놓인 신상 앞에서 행하는 단출한 의례도 뿌자이며, 사원에 가서 드리는 예배도 뿌자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징소리가 울리고, 일곱 사내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램프 모양의 횃불을 강을 향해서 치켜든다. 그와 동시에 횃불을 한 바퀴 돌리고, 높이 쳐들고, 두 바퀴 돌리고, 다시 높이 치켜들고 하는 행동을 계속 반복해 나간다. 바로 뒤 단 아래에서는 파란색 운동복 차림에 털모자를 쓴 젊은 사내가 일정한 가락으로 징을 치며 소리를 이어나간다. 그 소리에 맞춰 일곱 사내가 계속 불을 돌리는 의식을 거행한다.
얼마간 거리가 있는 뒤편 공터 잎이 무성한 큰 나무 아래, 나이 지긋한 여인 한 사람이 앞에 상차림을 해놓고 앉아 있다. 그 뒤로 붉은 스웨터를 입은 일곱 명의 앳된 아가씨들이 나란히 앉아 낮은 소리로 함께 주문을 왼다.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 pp.156~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