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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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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 영화 ‘남영동 1985’의 주인공 김근태 이야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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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1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660g | 153*224*30mm
ISBN13 9788996975403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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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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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느낌이 있다. 체포되기 전에도 늘 그랬다. 이번에는 잡혀가겠구나, 하면 어김없이 그랬다. 스물여섯 번 중에 어느 한 번도 피해가지 못했다. 이번에도 나는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체포는 피하지 않은 것이고,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러나 그 차이도 사실은 차이가 아니다. 나는 지금 꼼짝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다. 겨우 눈동자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난 시절에도 나는 여러 번 꼼짝없이 묶인 채 내 운명을 지켜보아야 했다.
아내는 지금 자기가 반드시 나를 일으켜 세울 테니 지켜보라고 당신에게 큰소리를 치고 있는데, 아니다. 이십육 년 전에는 인재근이 나를 살려낸 것이 맞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싫지만, 떠오르는 대로 두서없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내 기억의 편린을 정리하는 것은 이제 내 몫이 아니게 되었다. 어떤 것은 현실 같기도 하고 꿈 같기도 하다. 내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도 있고, 하지 못하게 한 이야기도 있다. 여전히 하지 말아 주기를 바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제는 이것도 내 몫이 아니게 된 것 같다. --- p.9

나는 그 이발소가 싫었다. 목을 아프도록 조여 매는 보자기가 너무 더러웠다. 버짐이 핀 아이들의 머리를 밀었던 바리캉도 싫었다. 뒷머리와 옆머리를 미는 바리캉은 무디기까지 해서 머리칼을 자주 씹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싫은 것이 있었다. 생머리가 빠지는 아픔 때문에 몸을 비틀며 인상을 찡그리면 이발사는 교장 선생님의 아들이 엄살을 부린다며 목덜미를 꽉 눌러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말과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내 목을 잡은 이발사의 손이 주는 느낌은 그것과 아주 다른 것이었다. 나는 그 이질감이 아주 싫었다. 손으로 내 목을 누르는 그가 실제로 억누르는 다른 무엇을 나는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했다. 내가 교장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다른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바리캉으로 머리를 툭툭 치며 화를 냈을 것이다. 더 싫었던 것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 이발사가 나를 앉혀 두고 아버지를 속이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사람 옆에서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아버지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비굴한 타협 비슷하게 느껴졌다. --- p.18

내 눈길을 잡아당기는 것은 이상하게도 그렇게 주장하는 아이의 입이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목덜미였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조금의 떨림도 없이 그 아이의 미끈한 목젖을 타고 미끄러져 나오는 이 어휘가 내 목에는 가시처럼 걸렸다. 한 끼라도 굶어 보았을까.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반복하는 그 아이들의 ‘결사반대’에 나는 어쩐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 p.51

알프레드 마셜, 변 교수는 칠판에 먼저 이름을 썼다.
“마셜은 그의 주저인 『경제학 원리』 첫 페이지에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경제학은 부의 축적에 관한 연구인 동시에 인간에 관한 연구의 일부다. 경제학이 인간 중심의 학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는 들었던 마셜의 원서를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마셜은, 훌륭한 경제학자가 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덕목을 제시했습니다.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가 그것입니다.”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란 경구가 출현하게 된 사회적 맥락을 설명하고 변 교수는 강의실에 앉아 있는 다섯 명의 얼굴을 차례로 훑어봤다.
“이 자리에 있는 제군들은 냉철한 머리를 가진 것은 분명한데 뜨거운 가슴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 p.74

나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선택의 여지를 줄여 나갔다.
어젯밤, 박정희 대통령은 정부 각료 전원과 군 수뇌부, 서울 시내 대학 총장들을 배석시키고 학생 시위를 뿌리 뽑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시위 주동 학생을 색출해서 처벌하고 그런 학생들이 소속된 대학은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것이었다. 오늘 위수령이 선포되었고 전방에 주둔하고 있던 6사단 병력이 서울에 진주했다.
나는 박정희라는 인물이 점점 이해하기 어려웠다. --- p.89

내가 기계가 되어버린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가정교사를 세 개나 하도록 몰아붙인 누나가 원망스러웠다. 시위에 가담하지 못하게 만들 속셈으로 생활의 올가미를 내게 씌운 건 아닐까. 누나의 의도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건성으로 보고 있던 『경제원론』을 덮고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눈을 감은 채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회의가 밀려들었다.
나는 모든 것에서 지치고 있었다. 총체적 난국, 언론이 현재의 시국을 두고 한 표현이 지금의 내게 딱 맞는 말이었다. 누운 채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배운 담배가 이럴 때는 위안이 되었다. 외롭고 흔들릴 때 나는 혼자 담배를 피웠다. 진달래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이고 천천히 내뱉으며 흔들리는 나를 달랬다. 피곤이 몰려왔다. 이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그러나 섬광처럼 뇌리에 엄습하는 것이 있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메모를 하며 『경제원론』 한 권을 밤새 정리했다. 시험을 보든 보지않든 한 학기 동안 공부한 걸 마무리는 하고 넘어가는 게 마땅했다.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내 발버둥이기도 했다. 창밖으로 날이 밝아 왔고, 나는 책가방을 챙겼다.
하필 아침 식탁 앞에서 코피가 났다. 식구들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종암동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코피를 흘리기는 처음이었다.
홍릉, 교문 밖에는 이미 진압 경찰과 무장 군인이 배치되어 있었다. 정문에 들어서자 본관 건물 앞에서 집회를 하는 학생들의 구호 소리가 들렸다. 곧장 가면 본관이고 왼쪽으로 가면 오늘 『경제원론』 시험이 있는 강의동이었다.
나는 가방을 손에 든 채 오래 강의동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상황에서 도 지켰던 강의실의 창문들이 눈에 와 박혔다. 빈 강의실을 지키며 밖을 내다보던 창을 오늘은 밖에서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학원방위 상대 학생총회’가 열리는 본관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얼마나 먼 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는지, 나는 그 순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 p.95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난 아버지와 달라. 아버지처럼은 절대 살지 않을 거야. 나는 아버지와 대립하고 갈등하며 성장했다.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이 만들어 낸 게 지금의 나였다.
아버지의 장례 기간에도 나는 면도날 사건으로 아버지가 내게 입혔던 상처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누나는 너무나 서럽게 울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잘못은 내게도 있었다.
그때 나는 불에 달군 인두를 든 아버지에게 굴하지 않고 내 결백을 끝까지 주장했어야 했다. 그리고 면도날이 발견된 다음, 내게 용서를 빌지 않았던 아버지의 비굴함을 그 즉시 추궁했어야 옳았다. 그랬더라면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내가 이토록 복잡한 심정으로 서 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 p.101

전태일이 우리에게 준 충격은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의 처절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폭로한 비참한 노동 조건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감내하기 어려운 가난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고, 그들의 고통을 아파했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던진 충격의 실체는 조금 더 깊고 근원적인 그 무엇이었다. 세상의 어떤 무관심과 횡포도 훼손시키지 못한 한 인간의 완벽한 선의는 놀라운 희망의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전태일은 우리가 외쳐 온 정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불타는 몸으로 묻고, 차가운 주검으로 대답을 요구했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제 모두의 몫으로 남았다. 질문을 던진 전태일은 주검이 되어 대답 듣기를 영원히 거부해버렸다. 이제 그가 던진 질문은 내게도 평생을 두고 대답해 나가야 할 숙제로 남겨졌다. 참으로 어렵고도 잔인한 질문이었다.
11월 25일 수요일, 가톨릭교와 개신교의 합동 추모 예배가 연동교회에서 열렸다. 학교가 문을 닫아버린 상태에서 단식투쟁을 계속하던 나는 후배들을 데리고 이 예배에 참석했다. 어느새 나는 다시 맨 앞줄에서 있었다. 예배에서 김재준 목사가 한 추도사는 오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에 전태일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나태와 안일과 위선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다.” --- p.146

오늘이 누나의 결혼식이었다. 남편감은 교원양성특별과정의 강의를 맡았던 춘천교대의 교수라고 했다. 좋은 사람이기를 빌었다. 마음의 눈이 정확한 누나니까 틀림없이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믿었다.
결혼식 장소는 춘천이었다. 내 하나뿐인 누나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누나의 결혼식을 나는 먼발치에서도 지켜볼 수 없었다. 나는 누나가 좋아하는 초콜릿과 고구마과자를 사서 포장을 했다. 아무런 메모도 넣지 않았다. 닭장에서 계란을 몰래 꺼내 고구마과자와 바꿔 먹다 아버지에게 들켰던 날을 누나가 기억한다면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일이었다. --- p.176

남북의 상호 중상 비방과 무력 도발 중지, 합의 사항 실행을 위한 남북조절위원회의 운영, 전쟁 발발 방지를 위한 남북직통전화 개설, 이런 말이 이후락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김일성을 만나러 평양에 가면서 비상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청산가리를 손에 쥐고 있었다는 이후락의 이야기는 비장미까지 갖추고 있었다.
어리둥절했던 나는 곧 심한 혼란에 빠졌다. 지금까지 내가 헛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마지막 한 번의 대통령 임기를 정말 우리 민족의 염원을 실현하는 일에 바친다면 박정희는 과거의 모든 잘못은 다 용서받을 것이고, 지금까지 박정희를 비판하고 반대해 온 나는 부질없는 짓을 해 온 철부지가 되는 셈이었다.
박정희는 참으로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였다. 최주백 선배를 만나면서 박정희의 실체를 파악했다고 믿었는데 아니었다. 박정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을 했다. 이건 이승만의 길이 아니었다. 윤보선의 스케일도 아니었다. 심지어는 장준하의 시야마저 넘어서는 일이었다. 반외세 자주, 민족 대단결, 평화통일. 이건 김구의 노선이었고 스케일이었다. 박정희의 꿈이 민족의 활로를 여는 일에 목숨을 걸었던 김구에 가닿아 있었던가. 오늘과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오해와 비난을 무릅쓰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풍운아의 삶을 살아온 것이었을까. 나는 원점에서부터 박정희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 p.180

유신이 금지한 것은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만이 아니었다. 유신은 아가씨들의 미니스커트와 청년들의 장발을 금지했다. 경찰은 삼십 센티미터 자를 들고 다니며 아가씨들의 치마가 무릎에서 얼마나 올라갔는지를 재고, 남자의 머리카락이 두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쟀다.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는 연행하고, 장발을 한 청년의 머리는 길거리에서 바리캉으로 밀었다. 이발료를 내면 이발사가 길가에 흰 줄을 쳐서 만든 임시 유치장으로 와서 머리를 깎아주는 경우도 있었다. --- p.198

나는 특급 수배자가 되었다.
버스 정류장에 붙은 수배 전단의 내 사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전에 나온 합동 수배 전단에는 조그맣게 얼굴 사진만 실렸는데 이번에 나온 단독 수배 전단에는 전신사진이 커다랗게 실렸다. 양복을 입고 하얀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 영 촌스러웠다. 아마 2학년 축제 때 맥주 파티 장에서 찍은 것 같았다. 상대 졸업생 중에 맥주 회사 사장이 있어서 맥주는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 파티였다. 양복은 형의 것이었다.
신경린 시인은 나를 만날 때 그걸 어디서 한 장 뜯어 가지고 와서 꺼내 보이며 놀렸다.
“야, 사진 한 장 새로 찍어서 치안본부에 보내줘라. 재판 인쇄할 때부터는 바꿔 달라고 해. 촌스럽게 이게 뭐냐.”
“형님이 좀 보내 주세요.”
“내가 보내면 왜 사진을 보내냐. 실물을 보내서 팔자 고치지.”
나한테 걸린 현상금이 간첩을 훨씬 능가했다. 체포를 위한 전담팀도 만들어졌다. 특진을 노리는 경찰과 기관원들이 혈안이 되어 서로 경쟁을 벌였다. 내 연고지에는 경찰과 기관원들이 번갈아 가며 들이닥쳤다. 시도 때도 없이 구둣발로 안방까지 들어서는 그들에게 죽어나는 것은 가족과 친구, 후배들이었다. --- p.231

“이 친구 소개시켜 주기로 한 당신 후배 어떻게 됐어?”
장영국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부인에게 물었다. 그녀가 내게 자기 후배를 소개시켜 준다고 한 것이 벌써 삼 년째였다. 나는 그때마다 왜 소개 안 해 주세요, 하면서도 막상 약속을 잡자고 하면 한 발 빼곤 했다. 데이트를 할 마음의 여유도, 가정을 꾸려서 책임을 질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다려 봐요. 인연이 되면 언젠가 만나겠지.”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만나보고 싶으세요?”
“물론이죠.”
나는 그녀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면서 기다려 보세요.”
그리고 잠시 후에 한 아가씨가 집에 들어섰다.
“인사하세요. 여긴 제 후배에요.”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지금까지 내게 소개시켜 준다고 했던 바로 그 후배란 걸 알아차렸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까딱하는 그녀의 환한 얼굴이 눈부셨다. 내가 지하 보일러실에 너무 오래 가라앉아 있다 떠올라서 그런지도 몰랐다.
“여긴….”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던 장영국의 부인이 손가락으로 나와 장영국을 번갈아 가리켰다.
“친구!”
“안녕하세요. 인재근이에요.”
그녀의 경쾌한 목소리는 어떤 어둠도 밀어내 버릴 것 같았다. 인재근, 이름까지 근사했다. --- p.237

김병곤은 창고처럼 생긴 허술한 집의 이 층에 살고 있었다. 마루에는 애들의 기저귀가 치렁치렁 걸려 있었고, 부인 민숙은 식사 준비를 하느라고 종종걸음을 하고 있었다. 나는 주저주저하다, 어렵게 부탁을 했다. 민청련에 함께 해 줄 수 없을까. 그러나 그는 참으로 선선히 대답했다.
“그렇게 하지요.”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나는 투명한 영혼과 사심 없는 용기를 가진 사람의 선택이 어떤 것인지를 보았다. 기쁘고 자랑스러웠지만 동시에 가슴 저 밑바닥에 서 솟구쳐 오르는 아픔, 그리고 슬픔으로 옆구리가 시렸다.
병곤이의 가족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월급 받아가며 무엇인가 해 보려는 소박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 텐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시련을 헤쳐 온 후배를 불러내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가. 나는 부인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죄인이 되어 앉아 있다가 게처럼 옆 걸음으로 집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해서 김병곤은 직장을 그만두고 민청련의 상임위원장으로 다시 투쟁의 최전선으로 복귀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얼마나 많은 유능하고 아름다운 친구들의 삶을 저당 잡혀야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박정희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겨울 끝자락의 찬바람은 자꾸만 내 등을 떠밀었다. --- p.322

화장실에서 나오니 인재근이 술상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접시에 담긴 멸치와 함께 소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자, 이건 이 년 동안 고생한 김근태 씨 위로주!”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자, 이건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우리의 이별주! 건강해야 돼요. 김근태 씨.”
“…….”
고맙다, 미안하다, 그 말을 다 해버린 내겐 이제 남아 있는 말이 없었다.
“그래도 세상엔 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요. 유치원 선생님도 그렇고.”
아들의 그림은 유치원에서 우‘ 리 아버지’란 제목을 줘서 그린 것이었다. 병진이 쓴 우‘ 리 아버지’란 제목 앞에 ‘자랑스러운’이라고 덧붙여 준 건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은 우리 부부가 어떻게 사는지 아는 이였다. 고마웠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들의 마음에 내가 자랑스러워졌을까.
“김근태 씨,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씩씩하고 예쁜 아들, 딸로 키워 놓을 테니까.”
그렇게 아픈 밤이 깊었다. --- p.332

물고문이 시작되었다. 거구의 사내가 샤워꼭지를 잡고서 물을 퍼붓고, 다른 또 한 사내는 주전자에 담긴 물을 동시에 쏟아 부었다. 나머지 한 사내는 주전자의 물이 떨어지면 욕조에서 물을 채워 왔다.
처음에는 견딜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숨을 멈췄다 몰아쉬며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턱턱 막히고 눈앞이 아득해지는 순간이 닥쳐왔다. 메스꺼운 속은 금방 뒤집히고 콧속에서는 불길이 솟았다. 칠성대가 휘청거리도
록 온몸을 버둥거리고 뒤척였다. 몸은 땀으로 완전히 젖었다. 담요도 땀에 젖어 축축해졌다.
샤워기와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는 공포가 되어 온몸에 덮쳐왔다. 도대체 얼마나 견뎠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죽음의 경계에서 버둥거리는 동안 고문자들은 아주 낮게 서로 소곤거리며 키들거리고 웃었다. 이상하게도 이 지독한 고통과 공포 속에서도 그들의 웃음이 귀를 파고 들렸다. --- p.336

나는 완전히 발가벗겨졌다. 팬티마저 빼앗기고 나자 이제 내 수중에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상실감이 들었다. 그들은 나를 칠성대 위에 다시 묶었다. 발바닥과 발등에 전류가 통하는 밴드를 감았다. 약지와 새끼발가락 사이에 전기 접촉면을 끼우고, 그것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켰다. 그런 다음 발, 사타구니, 배, 가슴, 목, 그리고 머리에 물을 부었다. 차가운 물의 섬뜩함은 귀기가 살갗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고문 기술자는 쉴 새 없이 떠들며 조롱하고, 모욕하고, 위협했다.
“내가 왜 팬티까지 벗겼는지 알아? 이제 전기 통하면 고환이 터져서 피가 흐르기 때문이야. 팬티 하나 밖에 없는데 버리면 안 되잖아.”
그러면서 물고문을 시작했다. 강도는 어제의 물고문보다 덜했지만 질식할 것 같은 공포는 더욱 깊어 갔다.
“애들은 있다며, 다행이야. 이제 이 물건 다시는 못 쓰게 될 텐데.”
이 공포와 수모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런 건 없어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 p.342

도대체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혼란에 빠졌다. 이 고문 기술자는 나를 고문하기 위해서 고문한 것이었다. 내가 몇 시간 동안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버티려고 한 문제에 관해 그는 어떤 진지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나를 혼돈에 빠뜨리고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노동당 당원 번호를 기억하려고 했다. 4250905891, 이것은 1985년 9월 5일 24시였다. 나는 그 순간 시간을 몰랐기에, 어쩌면 끝없는 시간이었기에 그날을 그렇게 기억해두었다. 1985090524, 고문 기술
자가 켜둔 라디오에서는 우아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잔뜩 폼을 잡고 읊조리는 저 시적이고자 하는 언어들의 울림이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헤집던 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는데 저들의 밤은 저토록 우아하고 달콤했다. --- p.346

나도 남영동에 와서 처음으로 얻어낸 것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세 사람의 이름을 알아냈다. 전무라고 불리는 자는 경정 김수형이었다. 나를 서대문경찰서에서 연행해 올 때 양쪽에 앉았던 자는 경위 김영무와 경장 최상낙이었다. 내게는 이것이 큰 힘이 되었다. 이제는 적어도 누구로부터 당하는지도 모르고 당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 세 개의 이름은 그들이 경조금을 걷기 위해 돌리는 회람을 훔쳐보고 알았다. 나는 이들의 이름을 머리에 지워지지 않는 사진으로 찍어 보관했다. 경정 김수형, 경위 김영무, 경장 최상낙, 그러나 아직도 다섯 명의 이름을 몰랐다. 나는 그들의 이름도 반드시 알아내리라 다짐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짧으면 세 시간 반 길면 다섯 시간 반이 걸리는 이 고문을 통과하며 자멸하지 않을 수 있던 것은 악마 같은 이들 세 명의 이름이 었다. 그리고 아직 알아내지 못한 다섯 명의 이름은 내가 끝까지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내 머리는 저들이 던져 주는 터무니없는 각본을 외워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매일, 시간대별로 이 악당 여덟 명이 한 역할들을 머릿속에 기록하고, 정리하고, 암기했다. --- p.352

남영동을 떠나는 날이다.
한편으로 고문에 가담하면서, 또 한편으로 나를 향해 연민의 눈물을 보여 주었던 두 사람의 눈물을 기억했다. 나는 내가 당했던 이 처참한 모욕과 패배, 절망과 함께 그 눈물을 기억하고 싶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여기를 떠나야 산다고, 울먹이던 그 소수의 하급 경찰관들에겐 그것이 큰 용기였을 것이다. 그것은 남영동에서 나를 살아나도록 만든 아주 작은 구원의 빛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여기와 같은 최악의 장소에서도 존재하고 있었기에 나는 인간에 대해 완전히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 p.364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가슴에 담아 두기로 했다. 인간의 말이란 이럴 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내가 악수를 청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울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당신에게 처참하게 고문을 당하고 간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간다. 이러고도 속수무책인 것이 원통하다. 더구나 너무 끔찍하게 당해서 분노하기조차 두려운 것이 한스럽다. 떠나는 지금도 내놓고 욕 한 마디 할 수 없고 그런 용기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 말이다. 이 저주받을 인간들이, 악마 같은 자들이 내 생사여탈권을 가진 것처럼 군림하였으며 그에 아양조차 떨어야 했던 이 끔찍한 지옥을 나는 기어코 기억할 것이다.’ --- p.365

백남원은 내가 검은 승용차를 타기 직전에 계단으로 나왔다. 나는 이 사람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도록 뚫어지게 보았다. 떠나는 이 마당에서만은 당당하고자 하였다. 9월 4일부터 25일까지 나는 이런 눈초리로 이들을 한 번도 쳐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기
묘하게 열리는 남영동 대문, 육중한 철문을 나서서 구치감으로 향하는 자동차 속에서 따스한 오후의 햇빛을 온몸에 받았다. 아, 이 낯익은 거리에 내가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이 햇빛 속으로. 죽음 속에서 나는 살아 돌아온 것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송 경찰의 부축을 받아 겨우 검찰청 오 층에 내렸다. 균형 감각이 잡히지 않아 걸음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수갑을 찬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의 눈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거짓말처럼 복도에 사람이 서 있었다. 인재근이었다. 울음이 복받치는 것을 겨우 참아 냈다. 입을 열면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아 어금니를 앙다물다, 멈췄다. 통증 때문에 어금니를 물 수 없었다. 칠성대 위에서 수없이 앙다물었던 어금니로 잇몸은 완전히 내려앉아 있었다. 대신 갈라 터진 입술을 사리물었다. --- p.366

인재근이 호송 경찰과 함께 나를 부축해서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망설이고 망설였다. 내가 당한 얘기를 듣고 인재근이 괴로워할 것을 생각하면 그만둘까도 했다. 남영동의 고문실과 고문자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또 다시 보복당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남영동을 생각하자 고문당하던 장면이 동영상으로 핑핑 돌아가면서 독수리가 쪼아 대는 듯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나 혼돈 속에서도 나는 말했다. 이 고문은 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침묵한다면 남영동의 저 많은 고문실은 여전히 유지되면서 수많은 사람을 끊임없이 파괴할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무지 내가 원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저들의 악마와 같은 폭력 앞에 헤아릴 수 없이 굴복하고 패배했다. 그러나 저들이 내 육체와 정신에 각인시키려한 실행되지 않은 공포에마저 항복하게 된다면 내가 나를 용서하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자신이 아무런 볼품도, 무게감도 없는 검불이 되어 흔적 없이 흩어져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말하기로 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 둘, 세고 나서 침착하게 말했다.
“보여 줄 게 있어.”
인재근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 짧은 순간에 상황을 이해했다. 나는 잠시 계단에 주저앉았다. 난처한 표정을 짓는 호송 경찰에게 인재근이 잠깐만 내가 앉아서 쉴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 분이었다. 나는 신고 있던 양말을 벗으려 했지만 손이 제대로 발에 가 닿지 않았다. 인재근이 내 양말을 벗겼다. 짓뭉개진 발뒤꿈치와 꺼멓게 탄 발등을 부여잡은 인재근의 손이 덜덜 떨렸다.
“다른 데도 많이 다쳤어요?”
내 발을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그녀가 나를 올려다 보았다.
“굉장히.”
나는 팔꿈치를 들어 보였다. 그녀는 얼른 양말을 신기고 내가 입은 잠바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역시 짓뭉개진 팔꿈치를 확인한 인재근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일 분만 더 쉬게 해 주세요.”
호송 경찰도 나의 처참한 몰골과 인재근의 눈물이 애처로웠던지 고개를 끄덕였다. 인재근이 나를 안듯이 하며 귀를 내 입 가까이 댔다. 나는 머릿속에 외워 두었던 것을 그녀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9월 4일, 8일, 13일 각각 두 차례씩, 5일과 10일, 20일, 25일에 각각 한 차례씩 당했어. 한 번에 네 시간에서 일곱 시간씩, 온몸을 꽁꽁 묶어 놓고 전기고문, 물고문, 고춧가루 물 먹이기, 소금물 먹이기 등 온갖 고문을 다 당했어.”
이 짧은 말도 목이 갈라지고 입술이 타서 더 계속하기가 어려웠다.
인재근이 나를 부축하고 일어서며 내가 한 말을 반복했다. 검찰청의 텅 빈 계단은 그녀의 낮은 목소리를 큰 공명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정확하게 외우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만남은 기적 같은 것이었다. 더구나 관례와 달리 늦은 오후에 도착한 내가 인재근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꿈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한 달 반 만에 온기가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나는 간신히 인간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 p.367

나는 생쥐들에게 붙인 내 친구들의 이름, 내가 끝내 지켜 낸 이름과 지키지 못한 이름을 입안에서 불러 보며 안도하고, 슬퍼했다. 그리고 이‘실장’ 쥐가 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오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은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몸을 바닥에 두고 가벼이 일어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남영동 고문실 칠성대에서 수없이 충동질하던 기도였다. 나는 내 몸이 그만 쉬기를 요구한다. 신도 이해하지 않을까. 그래서 용서하고 거둬 주지 않을까.
어느 날 배식구로 조용한 목소리 하나가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밖이 시끄러워요. 사모님이 참 대단한 일을 하셨어요.”
나는 간수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 목소리는 환청처럼 들려왔다.
창문에 덧댄 비닐이 북처럼 울었다. 나는 입을 달싹거려 한 사람씩 불렀다. 내가 지켜 낸 이름과 지켜 내지 못한 이름, 나를 모욕하고 유린했던 이름, 끝없이 그리운 이름, 이름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려는 안간힘으로, 그들이 불러준 내 이름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그해 겨울 나는 죽지 않았다.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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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존재의 신성함을 경험했다. 실로, 실로 오랜만에 세계의 비의에 몸을 떨었다. 어떤 위협 앞에서도 도덕적 자긍심을 낮추지 않던 단독자의 고독, 그 비애와 슬픔과 연민과 고뇌들이 모여 강철 이미지로 전이되는 광경을 보라. 소설을 읽으면서 적어도 세 곳에서 울음이 복받치는 것을 누르지 못했다. 이 인물이 바로 그, 한국현대사를 뒤흔들며 오만하도록 당당했던 세대가 눈부셔 하던 그가 맞다. 우리가 그토록 경외해 마지않던 저 고적한 인간의 실체에 가장 근접한 거리까지 육박해 간 작가에게 갈채를 보낸다. 한국문학의 어느 모서리에 이렇게 위엄에 찬 인간형이 출몰한 적이 있었던가.
김형수 작가
자꾸 웃음이 났다. 순정을 다한 한 남자의 생을 읽으면서, 한 시대의 증언을 목도하면서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하면서 눈물도 났다. 스러져간 많은 별들을 떠올리며 아팠던 가슴에 오랜만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정지영 영화 <남영동 1985>의 감독
내가 영화 <남영동 1985>에서 맡은 김종태 역은 모진 고문을 받고 몸은 물론 영혼이 부서져 내릴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과연 나라면 견딜 수 있었을까? 연기를 하면서도 되묻곤 했지요.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를 읽고 알았습니다. 아, 이런 분이셨구나… 그래서 결국은 이겨내고야 마셨구나, 하고요.
박원상 배우
방현석 작가가 김근태 씨에 대해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혹시라도 그 사람을 너무 크게, 과장한다든지 그럴까 봐 조금 걱정스러웠습니다. 웬걸요, 생전 소탈하고 다정하면서도 고집스럽던 그 모습으로 김근태가 내 앞에 뚜벅뚜벅 걸어 왔습니다. 아무 군더더기도 걸치지 않고, 내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버지로 우리 이웃의 이웃으로, 무엇보다 평화를 사랑했던 민주주의자로….
인재근, 고 김근태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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