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사의 금고는 3시에 문이 닫힌다. 경리과에는 전부터 이야기해두었지만, 입금이 늦어지면 어떤 꼴을 당할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그들은 돈이 제때 오가지 않는 상황을 제일 싫어하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온라인 영업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입금을 완료한 다음, 본사로 가는 버스에 계약서를 실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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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코는 팔짱을 낀 채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긴자도, 도쿄역도 거리는 별 차이 없다.
그렇지만 먹고 싶다. ……결국 승리한 것은 그녀의 식욕이었다.
오랫동안 못 먹었으니 역시 쿠키로 하자.
유코는 두 손을 꽉 쥐었다. 뭔가를 결심했을 때의 버릇이다.
좋았어, 역시 도쿄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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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제 작작 좀 해, 마사히로! 두 번 다시 이런 일로 불러내지 마. 나이깨나 먹어서 이러고 싶니? 이제 진지하게 사귈 여자를 찾아보라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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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이런 비겁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게다가 어른이. 자기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면서. 레이나는 언제나 선택받는 아이잖아.
충격과 분노, 분한 마음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라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극심한 통증이 배를 찌르는 느낌에 마리카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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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오는 당혹스러웠다.
아무래도 평소 살던 LA의 건물과는 뭔가 다른 것 같았다. 바닥에는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건물 주민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주인의 여행길에 동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원체 가만히 있는 걸 싫어하긴 하지만, 이번에는 좁은 바구니 안에 너무 오랜 시간 있다 보니 지겨워죽을 지경이었다. 대체 언제 밖에 내보내줄 거냐고 불만스러운 마음으로 바구니 뚜껑을 코로 찔렀는데, 이동 중에 헐거워졌는지 쉽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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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나는 지금 바람이 된다. 뇌세포도 몸도 바람에 날려 순식간에 흙으로 돌아가리라.
겐지 뒤에 앉은 요시히토의 머릿속은 정지되어 있었다.
비와 땀과 눈물과 침이 한데 섞여 얼굴을 적셨다. 초점 없는 눈, 멍하게 벌린 입. 그는 이미 자신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무아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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