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1948∼1991, 본명 고성애)는 전남 해남의 송정리에서 5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20∼30대에는 전남에서 지역지의 기자로 활동하고 문학동인 활동 및 YWCA 간사를 지냈다.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한국신학대학을 다녔으며(1975∼1979), 1975년 박남수 시인의 추천으로 <연가>, <부활 그 이후>로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1979년 <목요시> 동인(허형만, 김준태, 장효문, 송수권, 국효문 등) 및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로 활동했다. 그해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를 출간했고, 이후 1∼2년마다 빠짐없이 시집을 출간하면서 활발하게 시작 활동을 하고 시적 인식을 실천에 옮기는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제2시집 ≪실락원 기행≫(1981)을 펴낼 당시에는 기독교문사에서 근무했으며, 제3시집 ≪초혼제≫과 제4시집 ≪이 시대의 아벨≫(1983)을 같은 해에 출간했는데 이 중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에서 억울하게 죽어 간 민중의 넋을 기리는 장시를 담은 시집 ≪초혼제≫로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즈음 크리스챤아카데미 출판간사 일을 하는 한편 <또하나의문화> 창간 동인으로 여성문화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으로 일했다. 제5시집 ≪눈물꽃≫(1986)을 펴내고 이어서 1987년에는 <또하나의문화>에서 펴낸 동인지 ≪여성해방의 문학≫에 <우리 봇물을 트자>라는 권두시를 실으면서 여성문화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에 들어서서 체계적인 활동을 했다. 이 시기에 제6시집 ≪지리산의 봄≫(1987)을 펴내고 1988년에는 ≪여성신문≫의 초대 주간을 맡았다. 제7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와 제8시집 ≪광주의 눈물비≫(1990)를 연이어 펴낸 후, 필리핀 마닐라에서 식민지 경험을 겪은 국가의 예술가 워크숍에 참여하고 돌아와 제9시집 ≪여성해방출사표≫(1990)와 제10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1991)를 이어서 출간했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운데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가족법개정운동사≫를 편집 제작하는 등 현실의 삶에서 인식을 실천하는 일에 매진했다. 1991년 6월, 지리산 등반 도중 뱀사골에서 사고로 43세의 삶을 마감했다. 이듬해 유고시집인 제11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가 출간되었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은 김춘수와 김수영 시학을 대비적으로 분석해 한국 모더니즘시의 구도를 밝힌 연구다. 한국 현대시에 관한 저서로 ≪현대시학의 두 구도-김춘수와 김수영≫(1999), ≪김수영 혹은 시적 양심≫(2006), ≪공감-시로 읽는 삶의 풍경≫(2007, 공저), ≪김춘수의 무의미시≫(2012, 공편저)가 있으며, 여성 문학에 관한 저서로 ≪한국여성시학≫(1997, 공저), 책읽기와 글쓰기에 관한 저서로 ≪명작 속에 숨어 있는 논술≫(2005, 공저), ≪명작의 풍경-롤리타에서 싯달타까지≫(2010, 공저), 그 외의 공저로 ≪새로 쓰는 한국시인론≫(2003), ≪행복한 시인의 사회-80년대 시인론≫(2004), ≪시대를 건너는 시의 힘-70년대 시인론≫(2005),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90년대 시인론≫(2009) 등이 있다. 한국 현대시의 젠더에 관한 주제, 시학을 새로 밝혀 나가는 주제, 문학 텍스트를 삶 읽기와 글쓰기로 연동하는 문제 등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2012년 현재 한신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