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정치와 다 연관된다고? 대체 왜 그럴까?
일단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어.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혼자서 모두 마련할 수 없잖아?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과 원하는 게 다 달라서 갈등과 싸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데 있어. 사람들은 생김새만 다른 게 아니야. 장래 희망이 다르고, 좋아하는 영화나 노래, 혹은 좋아하는 아이돌도 다르지. 하는 일에 따라 이해관계도 다 다르단다. --- p.13-14
사실 사회 갈등이 해결되지 못해 증폭되고 극심한 반발로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현상은 정치권력의 정당성과 직결된 경우가 많아.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도 정치권력의 정당성은 아주 중요하지.
그렇다면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2016년 겨울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간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의 권위(정당성)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 p.25
대의제가 민주주의가 되려면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해. 먼저, 시민의 요구에 정치체제나 대표자들이 바로 대답하고 있는가, 즉 ‘반응성responsiveness이 높은가?’가 중요한 기준이 되겠지. 시민이 선출한 대표에게 중요한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다고 해도 다수 시민의 요구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형식만 민주주의이지, 실제로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어. --- p.34-35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든, 그것은 시민의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과 시민참여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단다. 민주주의는 조용히 훌륭한 결정을 내리는 제도가 아니라 시민이 공개적으로 판단하는 정치제도거든. 따라서 어떤 결정이 민주주의에 부합하는지는 ‘시민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끌어내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지’에 따라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 p.38
다원 사회에서는 갈등이 불가피하다고 했지? 그리고 정치란 대립하고 갈등하는 사람 혹은 집단 들의 이익이나 가치를 조정하는 일이라고 했어. 그런데 ‘어떤 기준에 따라 조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늘 따라다닌다는 게 문제야.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한 기준 중의 하나가 ‘정의justice(正義)’라는 개념이야.
정의가 뭐냐고? 정의란 사람들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어떤 기준 같은 거야. 만약에 옳은 기준, 즉 정의가 존재한다면? 정의의 기준에 부합되는 결정이라면 모두가 그 결정에 동의할 거야. 어떤 문제를 두고 치고받고 싸우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줄 기준이 되는 거지. --- p.46
모든 사물과 인간에게 타고난 본성이 있다는 이런 생각은 좀 위험해 보이지 않아? 똑같은 물을 먹어도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지만,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된다는 말과 비슷하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과도 비슷하고. 이런 생각이 좀 더 발전하면 정치는 천한 것들의 뜻에 따르면 안 된다면서 신분제 사회를 정당화하게 돼. 요샛말로 하면, ‘금수저’의 특권이나 더 많이 가진 자의 ‘갑질’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지. --- p.52
이런 주장의 결론을 짧게 이야기한다면, 권력이 개입하지 않은 시장만이 인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이 주장도 생각해 볼 게 많아. 지나치게 불평등한 사회조차도 정의롭다고 하거든. 시장 질서는 독과점과 빈부 격차, 사회 양극화를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어.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몇십 년 동안 재벌의 시장 지배가 문제시되었고, 요즘에는 가진 자의 ‘갑질’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어. 어떻게 보면 시장이 처음부터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지 않아서 빈부 격차가 심화된 거야. --- p.60
그런데 산아야, 자유를 간섭이 없는 상태라고 하지만 자유로운 상태가 어떤 것인지는 꽤 복잡한 문제란다. 어떤 행동을 할 자유가 있다는 건 자신이 이루려는 어떤 ‘목표’가 있을 때 의미가 있어. 그리고 자신 이외의 다른 누군가의 간섭이나 제약이 없어야 해. 그런데 이것만으로 자유롭다고 정의하기에는 뭔가 부족하지. --- p.79
그래서 루소는 극심한 불평등이 없는 사회여야 자유가 보장되고, 민주주의도 작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 다만 완전한 평등은 유토피아에 불과하기에, ‘너무 가난한 사람이 없고, 엄청 부자인 사람이 없는’ 정도의 평등, 소위 ‘갑질’하는 사람이 없는 정도의 평등을 주장했단다. 누구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정도의 평등이라는 뜻으로 ‘조건으로서의 평등’이라고 하지. --- p.88
인간은 똑같이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다르게 대우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아. 돈이 많다고 해서 돈 없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 아니지. 힘이 세거나 싸움을 잘하는 일진이 힘이 약한 애들을 마음대로 ‘빵셔틀’ 시키고 괴롭혀도 되는 건 아니잖아?
평등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어. 사회적 가치를 배분하는 기준이 중요하고, 이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다고 했지? 다원 사회에서 가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할 기준은 결국 공평성이야. --- p.103-104
아주 오랫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간은 평등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은 노예가 되도록 태어났고, 또 어떤이는 지배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생각이 널리 통용되었어. 또한 ‘한 국가 안에 사는 모든 인간은 신하된 백성(臣民)으로, 왕명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말도 통용되었지.
이런 상황에서 로크나 루소는 ‘국가가 없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인간은 어떤 존재였을까? 국가는 왜 생겨났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거야. 자연 상태와 사회계약이라는 가상의 개념을 통해 고리타분
한 위의 주장을 하나씩 반박한 거지. --- p.130-131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단 정치를 좁게 보려고 한단다. 개인의 문제를 제외한 공적 문제만을 정치적 결정의 대상으로 보거든. 자유주의자는 개인 간의 갈등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되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지.
자유주의는 정의의 기준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증진시키는가? 침해하지는 않는가?’에 맞추려는 경향이 있어. 따라서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고 ‘작은 정부’를 지지하지. 정치를 좁게 보는 것도 이 때문이지. --- p.146
대중에 의해 통치rule by people되는 민주주의는 우매한 대중에 의한 통치--- p.중우정) 혹은 대중의 인기에만 연연하는 포퓰리즘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거지. 한마디로, ‘대중은 합리적이고 성숙한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기에 민주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거야. 음, 이런 논리는 현대판 ‘철인 통치’라 해도 될 것 같은데? --- p.165
4 ·19 혁명이나 6월 항쟁 같은 사건을 떠올려 볼까? 역사를 되돌아보면 소수의 권력은 촛불시위 같은 다수의 의지와 정치참여로 막을 수 있었어. 자유주의는 다수의 횡포를 우려했지만, 역사를 보면 시민의 자유는 다수의 횡포가 아니라 소수의 권력에 의해 침해받아 왔어. 자유주의가 원하는 시민의 자유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통해 더욱 잘 보장될 수 있다는 거야.
--- p.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