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일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로 지난 20여 년간 맥킨지앤드컴퍼니, CJ,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코리아, 구글, 한국필립모리스 등 유수의 기업에서 일해 왔다. 나는 이러한 커리어가 ‘인문학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인문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인류학자들은 자신을 ‘주변인marginal man’으로 규정한다. 한 집단을 연구할 때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 그 구성원들에게 깊이 공감하기 위해서는 외부인이자 내부인, 즉 주변인의 시선을 굳게 지켜야 한다. 주변인의 정체성으로 나는 지난 20여 년간 인류학과 비즈니스라는, 언뜻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세계를 탐험하며 둘 사이를 오가는 길을 발견하고 단단하게 다져왔다. 이 책은 나의 이런 여정을 담은 인류학적 기록이자 비즈니스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서문」중에서
그들이 한국 문화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한국 유저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이해했으니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로 태도가 바뀐다. 까다롭고 유난스러운 요구가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맥락이 있는 합리적인 요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소비자는 소비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비자이기 이전에 국가, 지역, 직장, 가족, 취향 공동체 등 수많은 공동체의 일원이다. 따라서 컴퓨터 앞에 앉은 유저나 마트 매대에서 가격표를 확인하는 쇼핑객으로만 그들을 한정시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무엇 때문에 웃고 왜 화를 내는지, 어디에 관심을 쏟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총체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비로소 그들의 소비 패턴도 보일 것이다.
---「PART 1 03 총체적 접근:소비자는 숫자가 아니라 일상에 존재한다」중에서
big data와 thick data는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 정량적인 정보인 big data로는 ‘무엇을 얼마나’에 관해 알 수 있고, 정성적인 정보인 thick data로는 ‘왜, 어떠한 맥락에서’에 대해 통찰할 수 있다. 머신 러닝에 의존하는 big data로는 정확성을, 인간 학습에 의존하는 thick data로는 보편적인 진실을 추구할 수 있다. 변수를 제거함으로써 패턴을 식별하는 big data는 불확실성이 적을 때 유리하고, 반대로 불확실성이 클 때는 복잡성을 수용하는 thick data가 도움이 된다. big data가 과거 벌어진 일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해 준다면, thick data는 미래에 있을 일, 아직 알지 못하는 일을 알려 준다.
---「PART 2 01 비즈니스 통찰은 Big data가 아닌 Thick data에서 나온다」중에서
‘왜’ 그 일이 벌어졌는지가 어째서 중요할까. 왜 성공했고, 왜 실패했는지 모르면 과거의 성공을 현재로 이어갈 수도, 과거의 실패에서 벗어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블리자드는 왜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 I이 그토록 큰 성공을 거뒀는지 깊게 알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스타크래프트 II는 한국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블리자드가 한국인이 스타크래프트 I에 열광한 이유를 앞서 밝힌 세 단계에 따라 정확히 분석했다면 다음 시리즈를 성공으로 이끌 smart data를 얻어 스타크래프트 II를 한국에서 흥행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블리자드의 사례가 단적으로 보여 주듯 미래를 예측할 힌트는 언제나 ‘무엇’이 아닌 ‘왜’에 있다. thick data의 통찰을 big data로 증명한 smart data만이 무슨 일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 줄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하는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있다.
---「PART 2 04. Thick data를 넘어 Smart data로」중에서
소비자 조사를 통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없는 이유는 소비자가 자신의 잠재된 욕구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가 일깨워 주기 전까진 특정 상황에서 어떤 필요성이나 불편함을 느끼고 있음을 잘 깨닫지 못한다.
P&G가 소비자의 가정을 방문해 자사의 세제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관찰했더니 소비자 대부분이 세제를 물에 풀고서 막대기로 휘휘 젓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한결같이 P&G 세제에 아무런 불만도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왜 세제가 물에 녹지 않아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자신이 세제 푼 물을 저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참여관찰을 통해 P&G는 물에 잘 녹는 세제를 개발했고, 이 세제를 슈퍼마켓에서 발견하고서야 소비자들은 세제를 물에 풀고서 휘휘 저었던 자기 습관을 의식할 수 있었다. 불편함을 해소하는 신제품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소비자 스스로가 그간의 불편함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PART 3 01 소비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