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5월, 초대 주한 미국 공사 푸트가 전권 공사 자격으로 착임하여 고종을 흡족케 한다. “뭣보다 청나라 눈치 때문에 외국에 공사 파견하는 건 좀 부담스럽다랄까….” “상주 공사 파견이 부담스러우시면 일단 방문 사절이라도 먼저 보내보시죠. 그리고 베트남 문제 때문에 지금 청나라는 조선에 딱히 신경 쓸 경황이 없을 겁니다.” 그리하여 미국에 공사 파견에 대한 답례 격으로 보빙사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제1장 Sunbi in NY」중에서
청식 부대인 친군 좌·우영과 일본식 부대인 친군 전영은 서로를 원수같이 여기며 반목하고 있습니다. So, 친군 전영 사령관 한규직의 뜻과 상관없이, 친군 전영 장졸들은 마음으로는 개화당을 따르고 있어 사실상 우리 측 부대나 다름없습니다. 일본 자유당에서 보내준 장사 몇 명도 있고. 1884년 7월, 일본 육군 학교에 가 있던 유학생 14명이 귀국해 친군영의 조련소 교관들로 착임했으니, 얘들이 엘리트 장교로서 병사들을 이끌겠죠!
---「제4장 파워 밸런스」중에서
“서울 올라와 보니 김옥균이가 뭐 해놓은 게 하나도 없더라. 자금 동원도 실패했지, 이 병력 외에 딱히 더 동원할 병력도 없지, 청군은 여전히 건재하지, 이번에 친군 후영에 대한 조치를 보니 전하의 뜻도 얻어내지 못한 듯. 아무래도 우리 집안은 이 무모한 모험주의 망동에서 발을 빼는 게 좋겠다. 애비는 참령관 사직하고 북청으로 돌아간다.”
---「제5장 쿠데타를 향하여」중에서
12월 4일 저녁, 우정국 건물 낙성식 연회에 국내외 귀빈들이 모여든다. 주요 참석자들을 볼작시면 미국 공사 푸트, 영국 총영사 애스턴, 청 상무위원 진수당, 외무아문 협판 묄렌도르프. 사대당 측 인사로는 친군 우영사 민영익, 친군 전영사 한규직, 친군 좌영사 이조연, 민씨 척족 민병석. 개화당 쪽에서는 이 연회의 호스트 홍영식,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윤치호 등등.
---「제6장 갑신정변 Begins」중에서
고종의 경우궁 이어 소식을 들은 친군 3사령관은 서둘러 경우궁으로 향하고. 경우궁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규완, 윤경순 등의 개화당 장사들에게 모두 피살된다. 이로써 부상당한 민영익을 비롯해 친군 4영의 사령관들이 모두 리타이어. 이어서 정권 수뇌 3인방이 비상 호출을 받고 경우궁으로 급히 달려오고. 민태호, 민영목, 조영하도 경우궁에 입궁 후 살해당한다.
---「제7장 Day-1.0」중에서
“…한번 죽는 것은 아직 나라를 위해 아껴두고자 합니다. 신은 이제 전하 곁을 잠시 떠나오나 전하를 위해 바칠 목숨, 청천백일 아래 다시 용안을 뵈올 날이 있을 것이옵니다.” 그렇게 1884년 12월 6일 22시. 김옥균과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은 일본군과 함께 일본 공사관으로. 홍영식과 박영교, 신복모, 사관생도 7명은 임금을 모시고 북관왕묘로 향한다. 북관왕묘로 간 개화당 인사들은 그곳에서 친군 좌우영 병사들에게 모두 피살.
---「제10장 삼일천하」중에서
통킹 삼각주는 여전히 1만 5천 프랑스군의 통제하에 놓여 있고, 우리 군은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 적들을 통킹에서 몰아낼 능력은 확실히 없습니다! 더군다나 바다에서는 복건수사 전멸과 남양수사 반파로 제해권이 완전히 프랑스 극동 함대에 넘어갔고, 더구나 조선이 우리 뜻을 따르지 않고 러시아와 수교하면서, 러시아까지 극동 게임판에 등판하고 있으니, 베트남에 발이 묶인 채 이를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제14장 End of 청불전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