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리며 나는 이전에 몰랐던 하나를 알아버리고 말았다. ‘여행 글 쓰기’ 자체의 재미를 말이다. 나는 지난 여행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 기억 속 그곳들을 고스란히 다시 밟고, 다시 맛보고, 다시 체험했다. 내 손끝을 통해 한 번 더 여행을 떠나는 셈이었다. 사람들이 내 여행 이야기를 봐주고, 함께 여행 이야기를 하고, 그 과정에서 미력하나마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다는 것. 이 모두가 재미있고 기뻤다. 내 비록 스스로 세계를 창조하여 풀어낼 능력은 좋지 못하나 내가 경험한 세계를 재미있고 구성지게 늘어놓을 능력은 있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 불투명한 액체 상태였던 무언가가 단단하고 날카롭게 굳어 번득이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의 꿈 하나가 ‘꼭 되어야겠다’로 날을 벼렸다.
그랬다. 나는 꼭 여행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19-20쪽)
중국어, 스페인어, 힌디어 학원을 끊기 전에 먼저 중국을, 스페인이나 남미를, 인도를 여행하는 거다. 기왕이면 두어 달이라도 그곳에서 살아보는 것이 좋다. 그렇게 살듯이 여행하다 보면 길바닥에 널려 있는 언어를 나도 모르게 줍는 순간들이 생긴다. 간판에서, 영수증에서, 메뉴판에서, 노점상 아주머니의 외침에서, 명사만 영어이고 전치사?동사?형용사는 죄다 현지어인 호텔 주인장의 괴상한 어법에서, 미친 듯이 빙빙 돌아가면서 영어로 항의하면 듣는 척도 안 하는 택시 기사 아저씨와 싸우면서, 여행자는 정말로 절실한 현지어 한마디 한마디를 줍게 된다. 마음속에 그 나라 또는 언어권에 대한 진짜 애정과 관심이 싹트고 난 뒤에, 그렇게 주운 한마디씩의 언어를 밑천 삼아 본격적인 공부를 하는 것. 내가 가장 권하고 싶은 방법이다.
(64쪽)
보통의 직장인들이 거래처 김 부장님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에 오를 때 나는 인천공항으로 간다. 나의 최 이사님이나 박 사장님은 산과 바다, 박물관, 리조트 등이다. 등짝에는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손에는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머리와 가슴속은 그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으로 가득 채운 상태지만, 그래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여전히 설렌다. 익숙한 것들은 익숙한 대로 반갑고, 새로운 것들은 새로워서 두근거린다. 여행하는 삶을 지속하기 위한 여행, 여행작가인 나의 여행은 대개 이런 모습이다. (126쪽)
여행지의 냉장고 자석이나 스노우 볼, 종 등을 수집하는 사람은 꽤 많다. 내가 주로 모으는 것은 차茶다. 취재 중간중간 카페에 서 쉬는 동안 그 지역 특산 허브 티, 홍차, 녹차, 커피 등을 마셔보고 마음에 들면 구입한다. 현재 집의 장식장에는 영국에서 사온 포트넘 앤 메이슨 홍차, 홍콩에서 구입한 리치차, 일본 나라奈良에서 구입한 호지 차, 크로아티아에서 산 믹스 허브티, 오키나와에서 산 건강차, 터키에서 산 오가닉 티 등이 주르륵 늘어서 있다.
가끔 여행의 순간들이 그리워지면 차를 한잔 만들어 마신다. 언젠가 사람들과 세계 각자의 차를 마시며 여행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를 하나 갖는 것이 지금의 자그마한 꿈이다. (137-138쪽)
이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려운 세상에서 여행자의 삶을 꿈꾸거나 여행작가라는 직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도움이 되기를, 또는 이 세계가 궁금했던 사람에게 단편적이나마 실감을 전해주기를, 또는 그냥 읽을거리가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잠시 좋은 심심풀이가 되었기를 바란다.
내가 쓴 글의 행간에서 독자들이 그 어떤 예상치 못했던 메시지나 뉘앙스를 읽어내든 말든,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다. 나는 진짜 이 직업을 사랑한다. 그리고 여행작가라는 직업은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직업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세상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여행작가도 힘들고 서글픈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겠다. 아마 다시 태어나면 좀 더 빨리 이 길로 오기 위해 영악한 지름길을 밟을 것 같다. _에필로그 중에서
_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