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광적인 행동이 아이에게서 엄마를 앗아갔고, 한 사람의 생명을 가혹하게 짓밟았다. …중략… 그래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그녀가 끌려가던 그때, 목격한 사람 중에 단 명이라도 빨리 경찰에 연락을 했더라면 그녀와 아이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만약 그랬다면 지금 점퍼를 뒤집어쓰고 철면피한 소리를 내뱉는 저 짐승들의 운명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 분노를 다스리기가 힘겨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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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상에 등장한 아이의 얼굴을 대면하는 순간 그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면서 정상인 것을 확인하게 될 때, 그때의 안도와 기쁨 그리고 밀려드는 감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는 그 크기만큼, 아니 그보다 백 배, 천 배만큼 절망하기도 한다. 천 명의 한 명, 만 명의 한 명, 아니 십만 명의 한 명에 속하는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태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출생순간부터 부모의 축복보다 충격과 당혹감을 대하며 이 땅에 첫발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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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뜻……, 내가 병원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도저히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결과물에 대해 대개 ‘하늘의 뜻’이라는 체념적 의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 하늘의 뜻으로 장기공여를 하거나, 하늘의 뜻으로 ‘좋은 사람은 하늘에서 쓰려고 일찍 하늘로 데려간다.’는 생각들이야 말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그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녀석은 생체이식을 위한 장기공여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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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녀에게는 자기 속으로 낳은 두 살배기 아들 하나가 유일한 친구였는지 모른다. 자신의 고단한 삶을 아직 베트남말도 한국말도 못하는 아이에게서 위로받으면서 동병상련이라는 감상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아들 사랑은 정말 극진했다. 어느 부모야 안 그러랴마는 그녀는 정도가 지나쳤다. 아이가 감기가 걸리건, 배탈이 나건, 아이에게 조금만 이상이 생기면 한국식 포대기로 아이를 둘둘 감아 업고 남편을 보채서 득달같이 병원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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