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많은 여성들은 남편을 경제적으로 돕기 위해서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혼생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하고 있다. 아니타는 결혼생활을 지속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몰래 이혼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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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프랭크 불스텐버그가 제안한 것처럼, 가족을 위한 '마셜 플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른 선진 공업국가를 참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아기를 출산한 모든 맞벌이 부부가 12개월의 유급 육아휴가고, 나머지 석달 동안은 매달 300달러가 지급된다. 부모는 1년에 해당하는 기간을 자신들의 처지에 따라 자유롭게 나눠 쓸 수 있다. 또한 8세 이하의 아이를 둔 부모는 하루 6시간 근무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물론 임금은 6시간 분이다) 육아조합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학교를 방문하거나 자녀를 간병하느라 일을 못 했을 때, 일을 못해서 받지 못한 임금을 부모에게 지급한다. 진정한 의미의 가족보호정책이란 바로 이런 제도를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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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무능함은 전통주의를 신봉하는 남자를 집안일에 끌어들이는 한가지 방법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앓아눕는 것이다. 카르멘은 '자꾸 도지는' 관절염을 앓고 있어서 무거운 물건을 못 들었다. 그녀가 무능함을 이용한 것처럼 병을 이용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내가 만나본 전통적 여성들은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여성들에 비해 훨씬 자주 앓아눕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앓아눕는 데는 일정한 양상이 있다. 전통적 여성들은 집안의 모든 일이 '내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영웅적으로 일한다.
이들은 쉬지 않는다. 이들을 쉬게 만드는 것은 병이다. 어떤 때는 폐렴을 앓고, 어떤 때는 편두통, 요통, 관절염을 앓는다. 남편들은 응급 상황에서 '아내를 돕기' 위해 분주하게 일한다. 여자는 몸이 회복되자마자 곱배기 근무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다가 결국 다시 드러눕는다. 앓아눕는 것은 무력해지는 것과 비슷한 데가 있다.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여성들은 직접적인 투쟁을 통해 남편의 가사노동을 쟁취하지만 전통적 여성들은 간접적인 전략을 통해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재조정한다. 스스로를 전통주의자로 자처한 11%의 여성들은 한결같이 남편에 비해 그리고 다른 여자들에 비해 더 자주 아프다고 했다.
다른 전통적 부부와 마찬가지로, 프랭크와 카르멘 부부에게도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흥미롭게 뒤섞여 있었다. 이들은 전통적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지만 무자비한 현대의 경제적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성 우위를 열망했지만, 남녀 평등으로 후퇴했다. 프랭크는 아내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도 되는 남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생계를 위해선 아내의 수입이 필요했다. 카르멘은 부엌을 자신만의 영역으로 지키고 싶었지만, 현실에서는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 프랭크는 부엌이 아내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거기서 일했다.
그는 남녀의 세계는 유별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내가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를 때나 동결된 봉급으로 꾸준한 물가상승을 따라잡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릴 때 늘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카르멘은 자신의 일에서 경제적인 것 이외의 의미는 배제하면서 자신의 일을 좋아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의 일은 남편에게는 우월한 지위를 보장하게 하면서 스스로에게는 순종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주었다. 이들 가정에 카르멘의 수입이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그녀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에 대한 이상과 모순되는 곤혹스러운 힘을 여전히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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