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용 테이블에 십여 명의 여성들이 앉아 따로 또 같이 술을 마시고 있다. 말이 많은 나는 기어이 한 명을 골라잡아 말을 걸고 말 텐데, 무슨 말을 하게 될까? 궁금한 게 많은 나는 무조건 질문을 할 거다. 처음 보는 술을 가리키며 무슨 술인지, 맛은 어떤지 묻거나, 사적인 질문을 잔뜩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결국 질문은 하나로 맞춰질 게 뻔하다. “왜 혼자 마셔요?”
--- p.37~38, 백세희, 「왜 혼자 마셔요?」 중에서
다자이 오사무처럼 마시기란 무엇인가. 일단 마실 만큼 마셔야 한다. 이런저런 술을 마셔 보고, 좋아하는 술을 만들고, 주량에 대해 알고, 비틀거리거나 토하고, 실수를 하고, 기억을 하거나 하지 못하고, 술버릇에 대해 알고, 알면서 또 실수를 하고, 여럿이 마시고, 혼자도 마시고, 절주나 금주를 하고, 다시 야금야금 마시다가 아예 마시지 못하는 시간이 오는 것, 그게 다자이 오사무처럼 마시기다. 그러니까 술에 관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 보는 것.
--- p.61, 한은형, 「다자이 오사무처럼 마시기」 중에서
내 사진 속의 나 역시 젊고 오만한 미소를 지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사진 속의 젊은 그녀와 함께 독한 술 한잔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로선 매우 크고 헐렁한 오버코트를 대담하게 걸치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키 큰 고목 아래 서 있는 사진 속의 나는 곧 저녁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 대학로 어느 술집으로 달려갈 것 같은 표정이었다.
--- p.102~103, 문정희, 「나는 시를 마신다」 중에서
아는 사람이 데려가는 게 아니었다면 나는 그곳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쿨하다고 하든 힙하다고 하든, 유행과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허름하고 낡은 분위기에 다소 폐쇄적인 분위기가 있었으니까. 이른바 예술을 하는 남자 어른들이 데려가는 술집들이었다. (…)사십 대, 오십 대는 되어 보이는 여자 주인분에게 “알아서 주세요” 같은 말을 하면 술과 마른안주가 적당히 나오는 식이었다. 이런 술집에는 십중팔구 구석에 기타나 피아노가 있었고, 늦게까지 그 술집에 있으면 누군가는 그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쉽게 말하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 〈북촌방향〉에 나올 법한 술집이다.
--- p.111, 이다혜, 「금주의 조용한 지지자」 중에서
어쨌건 더러 마시던 독주도 이제 안 마신다. ‘발렌타인 30년’이고 ‘조니워커 블루’고 내게는 심야의 극렬한 치통에 살균 진통제로 한 입 머금는 응급약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집에 이제는 술이 없다. 대신 프로폴리스가 있는데, 치통에는 위스키가 나은 것 같다. 한 병쯤 아주 좋은 독주를 들여 놀까? 그러면 아주 가끔, 치통이 없어도 입에 머금게 될지도.
--- p.142~143, 황인숙, 「내 기억 속에서 찰랑거리는 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