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라는 세상은 허상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실과 맞닿아 있어요. 현실 기반의 가상 세상, 현실의 연장, 현실을 극복한 새로운 현실이 바로 메타버스예요. 다만 가상의 공간 메타버스도 멋지지만, 더 멋진 것은 바로 현실이에요. 우리가 발을 딛는 거리, 흙냄새와 꽃냄새가 피어오르고 싱그러운 바람을 즐길 수 있는 자연, 친구들 손을 잡을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엄마, 아빠와 함께 맛난 음식을 먹는 그 시간이 메타버스 세계보다 더 소중해요. 현실을 소중히 한다면 메타버스를 멋지게 즐길 수 있지만, 현실을 외면한다면 메타버스는 도피처가 될 뿐이거든요.
자, 이제 버스에 올라탈 준비가 되었나요? 오픈월드에서 저를 만난다면 아는 척해 주세요!
--- 「작가의 말」 중에서
예상대로였지. 아빠를 깨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어. 뒤돌아 있는 아빠가 왠지 처량해 보이더라. 엄마 말에 상처받고 기운이 빠진 것 같은 모습이었어. 내 물건만 얼른 챙겨서 나가고 싶었어. 그런데 물병에 물을 받으려고 정수기 쪽으로 갔다가 나도 모르게 식탁 위에 놓인 종이를 보고 만 거야.
‘으악.’
그걸 보는 순간 화들짝 놀라 소리 지를 뻔했어. 간신히 입을 틀어막았지. 이혼 신고서였어.
--- p.17
“메타버스요?”
“그래, 가상현실 오픈월드로 손님을 인도하지.”
“가상현실 오픈월드?”
셰익스피어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 또 콧방귀를 뀌었어.
“흐응, 16세기 사람인 나도 아는 것을.”
“가상현실이라면 뭐, 게임 같은 거 아닌가요?”
나는 멋쩍게 물었지.
“그래. 너희들이 좋아하는 게임도 메타버스에 속해. 하지만 우리가 가는 메타버스 세계는 현실과 연결되어 있어도 현실이 아닌 세상이지. 모든 게 꼬여 있을 거야!”
“현실과 연결되어 있지만 현실이 아닌 세상이요?”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
--- p.34
킁킁이가 무슨 말을 했냐고? 사랑은 마법의 주문으로는 통하지 않는 거라고. 사랑, 희망, 죽음, 희생처럼 위대한 것들은 마법으로 조종할 수 없는 거라고 말이야. 셰익스피어가 알려 준 마법의 주문은 캐풀렛 가문의 사람들이 나를 줄리엣의 시녀로 착각하게 할 수는 있지만, 줄리엣이 로미오를 사랑하게 할 수는 없다는 거지.
“하는 수 없네. 그냥 나에게 마법을 쓰는 수밖에.”
--- p.88
킁킁이는 팝핀 토끼가 혹시 나에게 주문을 알려 주지 않았는지 잘 생각해 보라고 했어.
“아니, 들은 게 없다고!”
킁킁킁.
“응? 들었을 거라고?”
나는 팝핀 토끼와 나눈 말을 곰곰이 떠올려 봤어.
팝핀 토끼는 캐풀렛 가문의 사람들과 싸우면서 나에게 호버보드를 넘겨줬고, 어서 달아나라고 말했어. 내가 함께 가자고 하니 그러면 붙잡힐 수 있다고 나를 도운 보람이 없다고 했지. 내가 로런스 신부도, 팝핀 토끼도 구하지 못해 최악이라고 말하니까, 팝핀 토끼는 나에게 갑자기 소리를 질렀어. 잠깐만. 혹시 그거 아닐까?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주문을 외웠어.
--- p.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