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익숙해졌다고 해서 정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해외에 짐을 풀고 살아가기 위한 수많은 조건 중에 언어는 고작 작은 조각일 뿐이다. 유학은 오롯이 나의 선택이었고, 운이 좋아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고, 시절의 도움으로 인터넷과 좋은 언어 교재를 쓸 수 있었다. 나의 해외생활은 그렇게 시작점이 달랐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감사가 누군가의 힘든 세월에 비교되어 더 안락함을 주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모국이 아닌 해외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오늘도 살아감을 기억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나라를 떠올리며 해외생활을 하고, 누군가는 돌아갈 수 없는 나라를 기억하면서 해외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그날의 기억으로 품었다.
--- pp.23~24
내 발음을 처음 들어도 한 번에 알아듣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서너 번을 더 만나도 내 말을 어려워하는 이가 있다. 처음에는 나의 독일어를 탓한 적도 있었지만, 인사조차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을 만나며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스위스, 프랑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가서기가 무섭게 뒷걸음질 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봤자, 그들은 이미 귀를 막고 있을 뿐이었다. 손으로 귀를 막는 것이 아닌, 편견과 혐오라는 감정으로.
--- p.43
모두 다는 아닐 테지만, 많은 와이프들이 종종 듣는 말은 “남편 따라 해외생활해서 좋겠다”이다. 물론 쉽지 않은 기회이고 특별한 경험인 건 맞다. 하지만 그걸 연구원 남편과 따라간 가족 모두가 만족하는 해피엔딩 스토리처럼 보아도 안 된다. 다른 언어와 문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밤마다 남편 몰래 눈물 흘리는 와이프들이 있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에 바로 적응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적응했다 싶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모의 말에 방황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 pp.58~59
다른 이에게 비난을 받을지언정, 스스로 위로조차 해 줄 수 없다면 내가 얼마나 불행할지 생각했다. 오롯이 내가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응원만이 나를 세울 힘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21
한 문장 한 문장 톺아보며 배워 가고 토론하는 그 시간이 자주 소름이 돋을 만큼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 놀라움은 철학서의 문장이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이들이 모두 나보다 서른 살은 많다는 점에서 왔다. 프랑스어로 쓰인 학술서를 읽던 날, 버벅대던 나를 도와준 이들도 모두 내 엄마보다도 나이가 더 많은 이들이었다. 도움받아 가며 배운 프랑스어가 일취월장한 건 아니었지만, 그 모임이 언어에 관한 생각의 한계를 무너뜨린 건 분명했다. 어린 나이에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익히들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약간의 욕심만 부리면 난생처음 보는 꼬부랑글씨도 읽을 수 있다. 나이 60이 넘어서도 말이다.
--- p.159
해외생활을 하다 보면 늘 귀국 시기를 생각해 보게 된다. 비자가 만료되는 시기가 귀국일일 수도 있고, 학위 졸업식으로 귀국일을 짐작해 보기도 하고, 근로 계약서가 귀국 시기를 알려 주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시기를 서류가 아닌 가족 소식으로 결정짓게 된다.
---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