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이 거의 모르고 있는 마르크스, 가정을 소중히 하는 남자로서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해 애쓰는 마르크스를 보여주고 싶었다. 또 나는 관객들에게 마르크스가 공격을 받고 자신의 생각을 변호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
그리고 무정부주의 시각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싶은 생각도 있어, 바쿠닌이 마르크스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꾸미기로 했다. …
이 밖에도 나는 흔히 마르크스를 평가할 때 한 가지 빠뜨리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마르크스를 이야기할 때 언제나 이론가, 사상가로서의 마르크스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마르크스는 혁명가로서도 보기 드물게 적극적으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나는 마르크스의 이런 다른 면, 그러니까 현실에 깊숙이 참여한 열정적인 혁명가로서의 마르크스를 무대 위에 올리고 싶었다.
항상 내 작품에 날카로운 비판을 아끼지 않는 나의 아내 로즐린이 계속 나에게 이 극을 마르크스와 19세기 유럽에 관한 역사극으로 만들지 말고, 우리 시대와 좀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극으로 만들어보라고 부추겼다.
나는 로즐린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한참 골머리를 앓은 끝에 약간 공상적이지만 마르크스를 현재로 불러내자는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가 미국에 나타나면, 19세기 유럽에서의 삶도 회상하면서 오늘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논평을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나는 관료주의적인 당국의 실수로(어떤 당국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르크스가 자신이 살던 런던의 소호가 아니라 뉴욕에 있는 소호에 돌아오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
나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론이 무자비한 스탈린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왜곡된 것을 보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세계 곳곳에서 억압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한 사이비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자본주의의 승리에 자못 흡족해하는 서구 정치가와 저술가들로부터도 마르크스를 구해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오늘날에도 근본적으로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분석이 옳다는 것은 날마다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사건들이 명명백백히 입증해 주고 있다. …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를 읽는 독자들은 이 1인극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정확한지 궁금할 것이다.
먼저, 마르크스의 삶과 그 시대의 역사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들, 그러니까 마르크스가 예니와 결혼한 것, 그가 런던으로 망명한 것, 자식 셋을 잃은 것, 그 당시의 정치적 갈등, 잉글랜드에 대한 아일랜드의 투쟁, 유럽에서 일어난 1848년 혁명, 공산주의 운동, 파리 코뮌은 모두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거론하는 인물들, 그러니까 그의 가족 구성원과 친구 엥겔스 그리고 그의 맞수였던 바쿠닌도 모두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다. 대화는 꾸며낸 것이지만, 등장인물의 개성과 성격에 충실하려고 노력했고, 단지 마르크스가 예니나 엘레아노르와 이데올로기적인 갈등을 빚는 것으로 상상한 부분에서는 상상력의 자유를 좀 누렸다. 그렇지만 마르크스가 나폴레옹 3세에 관해 말하는 부분처럼, 몇몇 경우에는 마르크스가 직접 한 말을 그대로 썼다.
모쪼록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가 그 시대와 그 시대에 마르크스가 차지한 위치뿐 아니라 우리 시대와 우리 시대에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 역시 조망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저자의 머리말에서
아, 시장경제는 정말 놀라운 힘을 가졌습니다! 인간을 한낱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인간의 삶을 최고의 상품인 돈이 좌지우지하게 만들다니!
(위협하듯 갑자기 불이 번쩍인다. 마르크스가 위를 쳐다보더니 관객을 향해 은밀하게 말한다.) 위원회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군요!
(그의 목소리가 누그러지며 추억에 젖어든다.) 소호에 있던 그 작은 아파트에서, 예니는 뜨거운 수프와 삶은 토마토를 만들었지요. 그리고 길 저 아래쪽에서 빵집을 하는 우리 친구가 보내 준 갓 구운 빵도 있었구요.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그날 일어난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아일랜드 사람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전쟁,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벌이는 행태, 진짜 중요한 문제는 제쳐두고 자질구레한 일에만 매달리는 야당, 겁쟁이 언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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