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애니메이션이 문학과는 다른 점도 있습니다. 시나 소설은 사람이 문자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3차원으로 다시 조합하는 과정을 거치기에 사람에 따라 머릿속에 그려지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다릅니다. 이렇게 보면 시와 소설이 독자 상상력의 예술인 반면, 애니메이션은 화면을 통해 확정된 이미지를 전달하기에 보는 사람마다 다른 상상력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에서는 관객을 만나기 전 애니메이터의 상상력이 더 필요한 예술입니다.
하여간 시에는 다양한 창작 방법이 있지만 대체로 이야기와 이미지를 연결하여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애니메이션도 이미지와 이미지가 연결되거나 연결되는 이미지에 서사를 입혀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데, 가장 큰 접점은 병치 은유와 몽타주일 것입니다. 몽타주는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하는 장면을 결합하여 이미지나 의미 충돌로 쇼트를 연결하는 편집기법입니다. 하여간 애니메이션도 생략과 함축된 이미지로 주제를 표현하다 보니 관객은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 「詩와 애니메이션의 미메시스」 중에서
오시이 마모루의 어두운 전망이 현재 진행형을 넘어 미래 진행형이 될 것이란 건 각자 상상의 몫입니다. 네트워크와 스마트워크를 통해 스마트폰의 편리만큼이나 나의 신체 및 인적 정보가 쉽게 노출됩니다. 그것이 또한 나를 통제하기도 하고 나를 규정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로 하듯이, 자신이 자신답게 살려면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하죠. 타인을 대하는 얼굴, 자연스러운 목소리, 눈을 뜰 때 응시하는 손, 어린 시절 기억, 미래의 예감’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 사회를 우리는 맨몸으로 지나고 있습니다. 쿠사나기 모코토의 말을 빌리자면, “네트는 방대하다.”그 네트워크 위에 우리의 무한 상상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걸 잊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상상이 만드는 미래」중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화와 옛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삶을 일러주는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50년 넘게 이 민담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려고 준비했답니다. 무엇 때문이냐고 했더니, 가장 끌렸던 부분은 가구야공주가 달로 돌아가야 한다고 아버지에게 털어놓는 장면이었는데, 가구야를 데리러 온 달의 사자가“가구야공주님은 죄를 저질러서 이 땅에 내려와, 너희처럼 천한 자들 집에 잠시 계신 것이다. 그 죄를 갚는 기간이 끝났기에 이렇게 모시러 왔다”라는 부분이었다고. 감독은 가구야가 달에서 저지른 죄는 어떤 죄며, 달과의 약속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이야기를 출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면, 가구야공주의 마음 변화를 단숨에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관객의 마음도 잡은 것 같았다고 합니다.” --- 「옛이야기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중에서
‘둘리’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것은 만화에서 TV애니메이션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뮤지컬 공연으로, CF로 확장된 미디어믹스 전략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TV애니메이션이 시청자들의 요구에 재방에 이어 일곱 번까지 방송되면서 아이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작가는 알게 되었을 겁니다. 둘리는 무엇보다 아이의 욕구와 심리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이야기 전략을 세워 대중으로부터 공감을 받았습니다. 또한 관련 상품이 나오면서 캐릭터 인지도 상승에도 기여하였고요. 이런 인기에 힘입어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의 파생 사업을 전개해,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생소했던 캐릭터 라이선싱이라는 분야에 ‘둘리나라’라는 회사를 설립, 적극 도전합니다. 그래서 이후 전개된 한국 캐릭터 라이선싱 사업의 전범이 되었고, 2000년대 들어 ‘뿌까’, ‘뽀로로’, ‘마시마로’등의 캐릭터 전성시대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렇게 둘리는 한국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산업의 역사에서 스스로 위상을 만들어 왔습니다.
--- 「둘리는 왜 사랑받았을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