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돌아와 저녁 밥상을 물린 아빠가 얼굴 가득 장난기를 담고 할아버지를 떠보기 시작했다.
“아버지! 오늘도 여자 친구랑 약수터 다녀오셨겠네요?”
“너 정말 자꾸 이럴래? 여자 친구는 무슨 여자 친구가 있다고 그래!”
할아버지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왜 소리는 지르고 그러세요? 여자 친구 있는 게 뭐 어떻다고! 안 그러냐, 근영아?”
“맞아. 히힛!”
잠옷 단추를 채우던 근영이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제가 오늘 하루 종일 생각해 봤는데요, 아버지 장가가시면 저희도 좋을 것 같아요. 히히.”
“얘가 정말!”
“찡이 할머니라면 대환영이에요. 좋은 분이라고 동네에서도 소문났잖아요. 나랑 근영이한테도 얼마나 잘해 주시는데요. 히히.”
“맞아! 찡이 할머니가 날 얼마나 귀여워해 주시는데!”
“어휴, 마흔을 넘긴 아들 녀석이나 열한 살짜리 손자 녀석이나 똑같네, 똑같어!”
할아버지는 벌컥 부아를 내며 나가버렸다.
할아버지가 나가자 근영이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
“왜?”
“할아버지 말이야, 진짜 장가가고 싶은가 봐.”
“왜, 무슨 일 있었어?”
“오늘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니까 얼른 멈추는 거 있지!”
“무슨 말씀들을 하셨는데?”
“한 마디밖에 못 들었어.”
“무슨 말?”
“할머니가 이러셨어. 나도 힘닿는 데까지 할 테니 아들 손자 걱정은 마시구려, 이러셨어!”
“똑똑히 들은 거야?”
“그렇다니까! 그리고 할머니가 할아버지 손도 꼭 잡고 있었단 말이야.”
근영이 목소리가 점점 들떠 올랐다.
약수터 평상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빠와 근영이는 좀 더 걸어 올라 늙은 밤나무 옆 빈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빠가 근영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근영아, 엄마가 어땠는지 궁금하지?”
“응! 난 사진으로만 봤잖아.”
“엄만 웃을 때가 참 예뻤어. 너처럼.”
“난 남자잖아! 그러니까 멋지게 웃는다고 해야지!”
“그건 그러네.”
아빠는 싱긋이 웃어 주며 근영이 머리를 어루만졌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아빤 정말 슬프고 힘들었어. 그래도 근영아, 우린 참 행복했지?”
“그래도 난 가끔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 엄마 보면.”
“맞아, 아빠도 그래. 그래도 아빤 네가 있어서 다 참아 낼 수 있었어. 너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 보면서 힘든 거 이겨 냈거든. 그리고 언제든 맘껏 기댈 수 있는 할아버지가 계셨으니까. 할아버지는 엄마가 갑자기 세상 떠난뒤에 주방장 일도 그만두고, 갓난쟁이였던 너를 밤낮으로 업어 키우셨어. 살림도 도맡아 하시고.”
“근데 아빠, 왜 갑자기 엄마 얘기해?”
“으응.”
아빠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초여름 하늘에는 흰 구름 몇 점이 한가로이 떠가고 있었다.
“아빠! 왜 엄마 얘기하냐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근영이는 아빠를 다그치기에 바빴다.
8월 12일
오늘은 할아버지가 나한테 손짓으로 옆에 누워 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궁금한 마음으로 할아버지 옆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할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창밖의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와! 하늘에 구름들이 굉장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구름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구름들은 각기 자기가 지어낸 온갖 모양을 하늘 가득 뽐냈습니다.
할아버지는 구름의 모양마다 이야기를 붙였습니다.
하나도 그런 것 같지 않다가도
할아버지가 설명을 하면 정말로 그런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떤 구름을 보고는,
주루룩 뻗어 내리는 내 오줌 줄기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구름을 보고는,
내가 어버이날에 할아버지 가슴에 달아 준 종이꽃 같다고 하셨습니다.
또 어떤 구름을 보고는,
내가 책가방을 메고 뛰어가다가 넘어지는 모양새 같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 생각만 하시나 봅니다.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