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자기반성의 관성화’라는 화두를 자주 떠올린다. 특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언론보도와 언론인의 태도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반성’이라는 단어가 ‘관성’이라는 단어와 연결될 경우 얼마나 자기합리화의 정점을 찍을 수 있는지도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일까,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자기반성’보다는 자신의 속내를 솔직히 ‘커밍아웃’하는 언론인에 더 눈길이 간다. 그들의 주장은 때로는 너무나 직설적이고 선전선동을 대놓고 주장하는 탓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독자와 시청자를 기만하지 않고 논점을 흐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솔직하다. 내 말을 곡해하지 말라.
‘직설적인 언론인’이 많아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일상적인 보도 투쟁’은 등한시하고, 특정 시기가 올 때마다 ‘반성하는 목소리’만 내는 언론인이 문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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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다른 것은 1990년대 이후로 온라인 미디어가 등장하고 방송 뉴스가 시간은 물론 채널도 늘어나는 등 양적 확대가 거듭되고 있죠. 결국 신문 시장에서 더 이상의 속보 경쟁은 무의미하다, 속보로 싸워봐야 방송과 인터넷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이런 인식이 보편화되는 기점 이후로 신문 시장은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속보 경쟁을 하고 종이 신문은 가급적이면 속보보다는 호흡이 긴 기사들, 시의성에 많이 얽매이지 않는 기사들, 하루의 호흡으로 만들 수 있는 기사들, 즉 분석과 비평이 주류를 이루는 내용으로 차별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종이 신문이 인터넷 매체에 비해 우월하다는 인식이 신문사 안에는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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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KBS와 MBC를 말할 때 제가 가장 강조해서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오욕의 역사’입니다. 과거 군사정권 때 그 방송사들이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나팔수 역할을 한 것도 문제고, 그때 당시 나팔수 역할의 주축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KBS건 MBC건 조중동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당시의 인적 청산을 제대로 못했어요. 그러니까 그때 기자 생활했던 일부 간부들이 민주화가 된 뒤에도 간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거죠. 하지만 계속 집권당 쪽에 섰던 그들이 국민의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고 참여정부로 계승되면서 청산됐느냐? 청산 못했습니다. 그게 KBS와 MBC의 비극인데요, 그때 그 선수들이 여전히 권력의 안테나에 맞춰서 자신의 신념을 바꿔요. 이것이 KBS, MBC의 비극이면서 한국 언론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권으로 교체되니까 다시 그 선수들한테 주파수를 맞추죠. 그렇게 과오 청산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거나 진보정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과연 KBS나 MBC가 제대로 된 내부 개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그럴 기회나 가능성은 더 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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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역사를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어요. 처음에는 주인(김지태)이 있는 방송이었다가 권력에 강탈당하면서 주인이 박정희로 바뀌었고,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88년 방송문화진흥회 출범 이후로는 주인(노태우)이 있는지 없는지 가물가물한 방송으로 이어져오다가 노무현 정권에는 ‘청와대로부터 전화 한통 안 받는 방송’이 됩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만, 언론 자유의 관점에서 보면 MBC 역사는 순리를 탔던 거지요. 그러다가 이명박 정권 들어 신경민 앵커에다 엄기영 사장마저 축출되며 MBC가 ‘권력의 방송’으로 회귀합니다. 정확히 ‘파파 대통령’ 시대로 말입니다. 겉은 공영방송인데 실상은 국영방송, 아니 박근혜 씨의 사영방송화 돼버렸다, 이렇게 봐야 옳지 않겠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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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을 만들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지나오면서 구 한나라당 입장의 방송에 대한 피해의식이 매우 컸다는 점이죠. 지상파 방송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절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겁니다. 한 가지 전제되어야 할 것은 그럼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지상파 방송사들이 집권여당에 우호적인 보도를 내보냈느냐? 전혀 아니라고 할 수
는 없지만 그 이전에 비해서 제작 자율성을 상당 부분 보장했어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비교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어찌 됐든 2번의 대선을 통해 한나라당은 나름 교훈을 얻고 지상파를 장악할 수 있는 방법과 영향력을 약화시킬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조중동 보수 신문의 이해와 보수 정권의 이해가 딱 맞아 떨어지는 거죠. 보수 신문 입장에서는 신문 산업이 사양 산업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신문만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 방송으로 진출해야 했습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신문사의 방송 진출에 적극적인 입장을 가진 쪽을 지지해야겠죠. 당시 한나라당의 입장이 그러했습니다. 민주당 등에서는 신문·방송 겸영兼營을 철저하게 반대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나라당은 사실상 그걸 허용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었으니, 그런 측면에서 조중동은 아주 노골적으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거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이고 한나라당 입장에서도 KBS, MBC로 대표되는 공영방송 체제를 두고서는 불안했던 겁니다. 언제든지 정권이 바뀔 수가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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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철저하게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지면을 제작하는 곳이 경제지라고 봅니다. 노동, 시민단체, 비정규직, 이런 데서는 돈 안 나와요. 그런데 대기업, 전경련, 주요 기업들에서는 광고라는 걸 들이밉니다. 철저하게 그 논리에 따라서 지면이 제작되고 기사가 제작되는 곳이 경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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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향신문〉을 볼 때는 다른 건 신뢰해도 되는데, 적어도 삼성 관련 기사마저 믿지는 마십시오. 윤색이 가해져 포장됐거나 혹은 광고와 연관돼 오더받은 기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삼성의 문제점을 100% 싣는다고도 보지 마세요. 이 두 신문에서는 삼성 광고 의존 비율을 뺀 나머지만큼은 믿어도 됩니다.
그리고 언론사 기득권 문제에 있어서는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너무 믿지 마십시오. 그들도 주류 언론 기득권 의식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 p.279
이제 공정한 편파를 말한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편파란 무엇인가. 편을 안 드는 것일까? 기계적 중립을 취하는 것일까? 아니다. 언론고시의 좁은 문을 뚫고 들어왔다면 적어도 사리분별이 가능한 식견을 가졌다는 증거 아닌가. 그 식견으로 의義의 여부를 기준으로 대의를 판별하고 용기 있게 말하라는 것이다. 언필칭 언론言論의 본래 의미도 그런 것 아닌가. 시대가 급격히 후퇴하면서 정의와 불의가 무엇인지 우리는 간별할 수 있다. 적어도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온 이들 중 노동자, 서민, 농민이 고통받고 신음하는 현실이 정의라고 말할 철면피는 없을 것이며, 부자와 강자의 이익을 대변하고도 불의라고 생각지 못할 팔푼이 또한 없을 것이다.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은 공정한 편파를 이야기해야 한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 역사가 퇴보하는 상황에서는 언론인도 필드에 뛰는 선수여야 한다. 세월호 참사 국면 때 이상호 MBC 해직 기자의 행보를 복기해본다. 그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구조’라는 연합뉴스의 천인공노할 왜곡에 대해 “개새끼”라며 격정을 토로했다. 유족 이익을 대변하는 입장이었으니 실로 편파적이었다. 아울러 정부를 불신하는 위치였다. 그러자 세월호 국면을 조기에 덮어야 할 목적이 뚜렷한, 권력과 이익을 공유한 타락한 언론 종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 언론인조차 그의 품격 없음을 지탄했다. 언론인의 금을 넘어갔다는 것이다. 본디 심판이 선수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성이 사라진 지옥에서 품위는 무엇이며 금도는 또 무엇인가. 언론이 선수로서 역할을 해야 할 시점에는 선수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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