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바니는 한밤의 아이들, 은빛 머리카락의 소녀, 뺨으로 흘러내린 눈물, 잡지 못한 생일 선물을 떠올렸다. 외로움에 잠에서 깨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길 건너 집에, 어두운 창문 뒤에 자신만큼 조용하고, 외롭고, 슬퍼 보이는 여자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두려운 건 괜찮다. 외로운 건 괜찮다. 슬픈 건 괜찮다. 따지고 보면, 어둠과 주먹질과 도살장과 잔인한 진실로 가득한 세상이니까.
하지만 그것과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희망이 있으려면 손을 내밀어야 한다.
라바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선택을 했다.
--- p.39
“나한테는 비밀이 있어, 라브. 아주 큰 비밀.” 불똥이 튀면서 타닥거렸다. 어디선가 나무 사이에서 올빼미가 울었다. “네가 비밀을 털어놔도 될 사람인지 알고 싶었어.”
라바니는 숨도 못 쉬고 기다렸다. 또 기다렸다. 그리고 말했다. “아. 그럼. 나, 통과, 했어?”
버지니아는 한참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어떻게?” 라바니가 물었다. 지난 이십 분을 돌이켜 봤다. 내내 히익거리고, 도망치고, 숨고, 겁에 질려 있었던 자신을.
버지니아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갸우뚱했다.
“밤중에 숲에서 도니에게 쫓겼잖아.” 버지니아는 더욱 바짝 다가왔다.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고 회색 홍채의 점이 보일 정도로. “하지만 숨을 곳을 발견했을 때 넌 어떻게 했지?” 라바니는 침을 삼키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버지니아의 두 눈과 쉰 듯한 목소리에 빠져들어서. “거길 나한테 내줬잖아. 그건 대단한 거야, 라바니 포스터. 넌 대단한 것 같아.”
--- p.87
“이제 네가 어떤 존재인지 말해봐.”
라바니의 머릿속에 온갖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난 쓸모없는 존재야. 난 이상해. 난 외로워. 난 구제불능이야. 하지만 그건 라바니의 말이 아니었다. 남들이 한 말이었다. 라바니의 영혼이 그 말을 오랫
동안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라바니의 영혼은 지쳤다.
새로운 말이 필요했다.
금처럼 귀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그건 옳지 않게 느껴졌다. 영웅도 마찬가지였다.
라바니는 버지니아를 봤다.
난 네 편이고, 넌 내 편이야. 그 애 눈빛이 소리 없이 말했다.
“난 동지야.” 라바니가 소리 내어 말했다.
--- p.144~145
라바니는 한 손에 망치를 들고 한 손에는 새 못을 들었다. 못 끝을 구멍에 밀어 넣었다. 숨을 참고 조심해서 못을 제자리에 박았다. 못을 하나 더 들어 반복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무를 잘 잡고
있는 동안, 못 세 개를 차례로 더 박아 넣었다.
라바니는 망치를 내려놓았다. 아버지도 새집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자.” 아버지가 말했다. “알겠지? 이제 더 좋아졌구나.”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고개를 숙이더니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가끔은 말이다, 뭘 부수더라도 제대로
고치면 전보다 더 튼튼해진단다.”
라바니가 훌쩍였다. “하지만 사람도 그렇게 쉬운지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어깨를 으쓱였다. “가끔은 훨씬 더 쉽지. 사람들은 보통 고치길 원하거든.”
--- p.259
아이들이 이야기를 마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비밀이 사무실 안에 울렸다.
“이제 아시겠죠.” 라바니가 말했다. “얘들은 범죄자가 아니에요. 얘들은…… 얘들은…….”
“어린 양이구나.” 스키니스터 씨가 나직이 말했다. 라바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바니는 둥지를 찾는 새일 뿐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다른 영혼은 같은 것을 가리켜 다른 방법으로 말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저 문 밖에는……” 라바니가 남자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살장이 있고.” 스키니스터 씨가 목멘 소리로 말하자 라바니는 다시 끄덕였다. 사냥꾼이라고 말할 생각이었지만.
--- p.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