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오래오래 사는 동안에 터득한 지혜로,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물이라도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밀은 비밀답게 각기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사물 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어떤 비밀은 겹겹의 두꺼운 껍질 속에 숨어 있기도 하고, 어떤 비밀은 마치 허드레 물건처럼 밖에 나와 있기도 합니다. 사물의 비밀과 만나는 일이야말로 세상을 사는 참맛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사나이는 탄식하며 다시 한 번 사람이 산다는 것의 허망함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사나이의 헛수고를 비웃어서는 안 됩니다. 사나이를 어리석다고 경멸해선 안됩니다.
사람이 고생하고 살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이아몬드도 아름다운 소녀도 아닙니다. 열심히 고생해야 기껏 아주 작은 이치를 얻어내는 데 불과합니다.
사나이는 다이아몬드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다이아몬드뿐이란 이치를 얻어냈습니다. 그만하면 아무도 사나이의 삶이 아주 허망하다고는 말 못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다이아몬드에 저항할 수 있는 건 다이아몬드뿐이라는 사실입니다.
--- 본문 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엄청나게 큰 화판을 내주시며 뭐든지 그려 보라고 하셨지. 아무리 뭐든지 그리고 싶어도 소년은 그때까지 보고 자란 것밖에 못 그렸지. 그 큰 화판이 지금까지 보존된 성당의 벽이란다.
그러나 그 그림을 어떻게 내가 그렸다고 할 수가 있겠니?
내가 그린 건 아주 미숙한 습작에 불과했는데 와 보니 평론가의 말대로 정말 좋은 그림이더라. 내 평범한 그림을 예술로 만든 건 오랜 세월과 사람들의 변함없는 사랑이었다.
명품으로 치는 골동품도 태어날 때부터 명품이었던 게 아니라, 세월의 풍상과 사람들의 애정이 꾸준히 더께가 되어 앉아야 비로소 명품이 되듯이 말이다.
--- 본문 중에서
한편 색시는 똥 싼 바지를 담은 옻칠한 궤짝을 비단 보자기로 쌌습니다. 그리고 계집종을 불렀습니다.
“너 이것을 우리 시댁에 여다 드리고 오너라.”
“이게 뭔데요?”
“넌 알 거 없다.”
“그래도 사돈댁 어른이 뭐냐고 물으시면 대답을 할 수 있어야죠.”
“뭐냐고 묻거든 ‘찌랍디다’로 아뢰어라.”
계집종은 비단 보자기에 싼 것을 이고 한달음에 사돈댁까지 갔습니다. 새아씨가 보낸 물건을 가지고 왔다고 하자 웃어른들이 대접도 융숭하게 안으로 맞아들였습니다.
비단 보자기를 끄르자 옻칠도 아름다운 궤짝이 나왔습니다.
“이 속에 무엇을 넣어 보내셨는지 아느냐?”
누군가가 계집종에게 물었습니다.
“찌랍디다.”
계집종은 간단히 아뢰었습니다. 아랫목에서 듣고만 있던 노마님이 얼굴에 만족한 웃음을 띄고 말했습니다.
“찔 것 없다. 사돈댁에서 보내신 귀한 건데 좀 굳었으면 어떻겠느냐?”
아랫사람들이 궤짝을 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노마님은 엄한 얼굴로 타일렀습니다.
“사돈댁에서 보내신 걸 사당에 고하여 조상님이 먼저 운감하신 후에 먹도록 함이 옳으니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