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아마존고에는 ‘노동자’가 아예 없을까? 물론 노동자들은 있다. 언론을 통해 소개된 내용을 보면 진열대를 채우는 직원, 드라이브 스루로 물건을 찾으려는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 관리직원, 포장 및 제품 생산 직원 등이 매장에서 일하지만 기존 마트에 비하면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아마존은 이렇게 인건비를 줄였다. 키오스크와 인공지능이 점원을 밀어낸 것 같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하는 일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림자 노동’이 되어 유령노동자들에게 떠넘겨졌을 뿐이다.
---「노동의 종말 그리고 플랫폼 노동」중에서
구글 인공지능 연구책임자 존 자난드레아는 2017년 《MIT 테크놀로지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의 진짜 위험성은 인간의 편견을 배운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공지능은 여성보다 남성의 얼굴, 목소리를 잘 인식한다. 흑인보다 백인의 형상과 얼굴을 잘 인식한다. 그렇게 학습한 인공지능운 ‘통계에 기반한 정확성’이라는 신뢰와 권위까지 누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한국의 법원을 질타하며 “차라리 인공지능 판사가 재판하는 게 낫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판사는 과거의 판례를 바탕으로 학습할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관대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
---「인간을 배우는 기계, 기계를 배워야 하는 인간」중에서
‘접근성’이 달라지면 입지 조건이 바뀌기 때문에 부동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농업도 달라진다. 자율주행 트랙터와 콤바인을 비롯한 농기계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벌써 현실화됐다. 우리의 먹거리를 자연 생태계만이 아니라 자율주행과 5G가 결합된 모빌리티 생태계에 의존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문화도 바뀔 것이다. 스스로 움직이는, 혹은 사람이 아주 약간만 조작해도 되는 자동차 안에서 탑승자는 무엇을 할까. 실제 지금 모델로 제시되고 있는 자율주행차의 실내는 영화관이나 거실과 비슷하다.
---「인간이 사라진 자동차, 인간이 사라진 세상」중에서
생명공학기업들의 주장과 달리 인도의 면화 농가들이 지불해야 하는 생산 원가는 2005년에 비해 2016년 2.3배로 늘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 위험한 이유는 우리 몸에 해롭기 때문이 아니다. 세계의 수많은 농민들이 노동의 대가를 종자 값, 비료 값, 특허 값으로 빼앗기기 때문이다. 생명공학 기업들이 신기술을 제공하고 시장을 점점 더 확대시키는 사이 농토는 상업의 장으로 변하고, 농민들은 거대 기업에 종속된다. 그 어떤 과학의 발전이 됐든 ‘오로지 기술적인’ 변화는 없다. 그 모두가 사람의 삶과 연결돼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변형된 음식을 먹고 사는 디자인된 사람들」중에서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러스는 평등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특정 계층, 인종, 지역의 사람들에게 전염병은 더 가혹하다는 것을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 스스로 목도했다. 미국 뉴욕시 보건부는 2020년 5월 60여 지역의 코로나19에 따른 사망률을 공개했다. 지도가 보여주는 바는 명확했다. 주민의 30퍼센트 가량이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지역에선 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232명에 달했지만, 10퍼센트 미만이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지역에서는 100명 미만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후 다시 코로나27을 맞는다면」중에서
코로나19로 세계의 유명 관광지들이 2020년 문을 닫았다. 갈라파고스도 폐쇄됐다. 그러면서 바다사자와 이구아나와 새들이 다시 섬들의 주인이 됐고, 200년 만에 잠시나마 평화를 찾았다. 코로나19 뒤 인도와 태국의 바닷가를 거북이들이 뒤덮고 영국의 거리를 산양들이 거닐고 칠레 도심에 퓨마가 활보하고 캐나다의 주택가에 새끼여우가 산보를 나왔다는 뉴스가 잇따랐다. 자동차와 공장들이 멈추자 지구가 맑아지고 빈사 상태의 생태계가 되살아나는 것 같은 신호가 줄을 이었다. 생태학자들은 ‘인간휴지기anthropause’라는 말을 썼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지구를 살릴 수는 없다. 모든 것은 결국 우리 행동에 달렸다.
---「파이프라인과 창밖의 날씨」중에서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출생과 함께 노화와 죽음도 개인에게 운명과 같은 일이지만, 신체 능력이 줄어든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보건기구는 “나이를 기준으로 행해지는 정형화, 편견, 차별”을 에이지즘ageism(연령차별)이라 정의하면서 “노인들의 건강에 해로운 음험한 관행”이라 불렀다. 젠더차별이나 인종차별에 비해 연령차별은 더욱 광범위하면서도 저항이 적고 ‘정상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진다는 특징이 있다. 차별 자체가 제대로 인지되지 않고, 그 부작용을 고쳐나가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직장에서 연령 제한도 에이지즘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호모 헌드레드의 시대」중에서
코펜하겐은 2012년 이미 2025년까지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 도시가 되겠다는 꿈을 세웠고 2019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보다 42퍼센트 줄였다. 당국은 이런 목표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함께 실천해나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편 정반대의 길을 택한 곳도 있다. 멕시코의 푸에블라 주가 15개 도시를 스마트 시티로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자 토난친틀라라는 인구 8만의 소도시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러한 갈등은 첨단기술이든 그럴싸한 구상이든, 시민들의 동의와 참여 없이는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택할 행복의 가치와 경로는 도시마다 다를 것이다.
---「점점 커지는 도시, 점점 짙어지는 그늘」중에서
2000년대에 들어 서구에서는 이민자들이 가지고 온 그들만의 문화와 원주민 사회의 문화가 충돌하면서 비극적인 사건이나 갈등이 늘었다. 2010년 메르켈 독일 총리는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고까지 단언했다. 최근에는 이주자들의 문화를 인정해주되, 정착국 사회의 관습과 가치관으로의 동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폴 콜리어 옥스퍼드대 교수는 “다문화주의라는 안이한 주장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달리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다문화주의도, 동화도 해법이 아니라면서 ‘상호문화주의’를 주장한다. 그는 다문화주의라는 개념이 세계화가 고도의 수준에 이르기 이전에 나온 것이라고 지적하며 한 사회 안에서 ‘낯선’ 문화 집단들도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상호작용을 하고,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새롭게 맺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공간 다른 사람, 이주자와 원주민」중에서
세계은행은 지금의 극심한 불평등을 가리켜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사회계약이 깨졌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평등은 사회를 분열시킨다. 그로 인해 “빈곤을 없애려는 노력은 더 약해지고, 더 많은 이들이 두려움 속에 남겨진다.” 옥스팜이 지적한 불평등의 대가다. 극심한 격차는 경제 자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난한 이들,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에 들어가는 투자를 줄여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결과적으로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씨티그룹이 2020년 9월 펴낸 보고서 《인종 간 불평등 격차 줄이기》는 “인종 간 격차가 20년 전에 줄었더라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6조 달러가 더 늘었을 것이며, 지금이라도 이 격차를 해소한다면 GDP가 향후 5년간 5조 달러 더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걷어차인 사다리를 다시 놓기」중에서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국 젊은이들이 대선의 판을 흔들었다는 의미에서 ‘유스퀘이크라고 표현했다. 기후변화를 주요 아젠다로 삼은 청년 행동그룹 선라이즈 무브먼트,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 이민자 관련 청소년 행동그룹인 유나이티드 위 드림 액션 등 미래 세대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미래라고 하면서 트럼프 이전으로의 복귀가 아닌 그 무엇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젊은이들의 움직임이 포퓰리즘 이후의 회복력을 결정지을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민주주의의 미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