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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떠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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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떠나기 전에

김제이 | 로담 | 2021년 05월 1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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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5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358g | 128*188*17mm
ISBN13 9791156411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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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해요. 우리.”
그는 손에 핏대가 서도록 커튼을 꽉 쥐는가 싶더니 이내 놓았다. 짧은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내가 고백한 게 달갑지 않은가. 설마 모든 게 장난이었나. 아니면 좋아하다가도 상대가 본인을 좋아하게 되면 흥미를 잃어버리는 이상성애자인가.
거절당했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은 나는 벌떡 일어나 맨발로 침대를 내려왔다. 커튼을 다시 치는 것보단 여기서 나가는 게 빠를 것 같아 급히 돌아서던 참이었다. 그의 긴 손가락이 내 팔목을 옭아맸다. 거센 힘이었다. 순간, 부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잠깐…… 잠깐만.”
퇴로를 차단당한 내가 돌아봤다. 그는 한 손으론 날 붙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론 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커다란 손은 작은 그의 얼굴 반을 훌쩍 가리고도 남았지만 나머지 반은 보였다. 창백한 손과는 달리 새빨개진 얼굴. 얼굴뿐만이 아니라 환자복 위로 드러난 목부터 귓불까지 봉숭아 물이라도 들인 것처럼 온통 붉은색이었다.
내가 헛걸 보는 게 아니라면, 그러니까 이 모든 게 현실이라면, 서재영은 날 거절하려는 게 아니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나.
나는 지금 내 앞의 서재영과 그간 내가 알고 있던 서재영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했다. 그사이 내 얼굴도 그 못지않게 달아올랐다. 붙잡힌 손목이 낙인이라도 찍힌 것처럼 뜨거웠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내가 이 불타는 얼굴 지옥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무슨 얘기라도 해 보려고 입을 벌리던 순간이었다. 그새 나만큼이나 진정이 된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입을 맞춰 왔다.
힘에 밀린 내가 침대에 앉혀졌다. 자꾸만 기우는 상체를 버티기 위해 매트리스를 힘주어 붙잡았다. 벌어진 입술 틈으로 그의 혀가 침범했다. 부드럽게 내 뺨을 붙든 손길과는 달리 입 안을 멋대로 헤집고 다니는 혀는 거칠었다. 높아진 체온으로 달아오른 입 안의 점막이 그의 혀를 만나 더 뜨거워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 헐떡이는 내가 침대에 눕고, 그는 거의 내 위에 올라타다시피 했을 때였다.
“이 자식이 얌전히 누워 있을 것이지, 어딜 자꾸 돌아다니는 거야. 재영아, 너 여깄…….”
통로와 우리의 침대 사이를 차단하던 커튼이 훌쩍 열렸다. 다행히도 우리는 입술을 떨어뜨린 상태였지만, 배와 배가 맞닿아 있었다. 놀라 굳은 우리를 그보다 더 놀란 눈으로 응시하던 원장님이 황급히 커튼을 닫았다. 그리곤 삼 초 뒤 다시 열어젖히곤 사과했다. 미안하다.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어쨌든 미안하긴 한데. 구구절절 시작은 길었지만 끝은 간단했다.
“너희 둘, 사귀니?”
동물의 배설물이 군데군데 묻은 가운을 입은 그녀의 등 뒤에, 세 사람이 더 서 있었다. 초롱이와 미진이 그리고.
“사귀지 않는 사이라면 내가 원장님 아들을 죽일 겁니다.”
삼촌.
통로를 지나다니던 보호자와 의료진이 무슨 소란인가 싶어 우리 쪽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미진은 신속한 동작으로 그들을 가로질러 와 커튼을 쳤다. 그녀의 뒤에선 초롱이 턱을 뺀 채 우리를 보고 있었다. 서재영은 그제야 몸을 일으키곤 웃었다.
“시작이 좋은데?”
다신 빼지 말라는 간호사의 당부가 무색하게 그의 손등의 바늘은 빠지기 직전이었고, 폴대는 그의 등 뒤까지 끌려와 있었다. 나는 키스로 정신이 없는 데다 그의 어머니와 내 삼촌, 그리고 친구들의 등장으로 멘탈이 나간 상태라 그저 멍청히 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떨어졌던 그가 다시 다가와 뺨에 입을 맞췄다.
“네 삼촌이 날 죽이지 않게 해 줘서, 고마워.”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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