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동안 총 세 명의 환자가 세상을 등졌습니다. 응급실도 아니고 일반병동에서. 낯익은 일은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은 이틀 연속으로 CPR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즈음에 들었습니다. 이브닝 근무 동안 총 열 명의 환자가 입원을 했고, 나이트 때는 앉아서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어요. 대학병원 간호사의 삶이란 이런 것이라며 저마다 충고해주던 선배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죠. 물론 이런 상황까지 예상하고 내린 선택이지만, 끊임없이 덮쳐오는 감정 소모와 우울은 나의 발끝부터 갉아먹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더 나빠질 것도 없고 더 슬플 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환자의 사망에도 보호자 면회는 2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밑바닥에서 한층 더 밑바닥으로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인해 보호자 출입 통제는 더 강화되었어요. 이전 병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런 간병은 고사하고 백신 접종 완료 여부와 COVID PCR 음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보호자 교대조차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얼마 전의 일이에요.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받고 입원했다가 입원기간 동안 조금씩 상태가 나아진 덕에 하룻밤이 지나면 전원을 하기로 한 환자였습니다.
“응급실에 있다가 여기 오니까 호텔 같네요. 다들 친절하시고……. 엄마만 좋아지면 될 것 같은데. 아직 엄마랑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같이 가고 싶은 곳도 많거든요. 코로나가 끝나면, 가족들 다 같이 어머니 모시고 괌에 다녀오기로 했었어요.” 간병인은 환자분의 막내딸이라고 했습니다. 지병이 없던 노모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하던 일도 다 제쳐두고 간병하러 왔다고,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으니 씁쓸하게 웃으며 그간 소홀했던 효도를 지금이나마 하려 한다고 말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엄마, 병원 창문이 이렇게 크지? 좀 춥긴 한데 이 자리에서 보면 아침에 해 뜨는 것도 보이고 노을도 예쁘게 보여. 엄마 노을 보는 거 좋아하잖아. 얼른 눈 떠서 이쪽 좀 보셔.” 강직이 생긴 환자분의 고개를 연신 창가 쪽으로 기울여주고, 야위어버린 몸이 가슴 아팠는지 자신의 스카프를 환자분에게 둘러주며 대화를 이어나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한데…… 왜 꼭 문제는 퇴원 전날, 전원 전날 생기는 걸까요. 약속이라도 한 듯 환자의 상태가 급변했습니다
고용량 산소 호흡기를 적용하고 요구량을 늘려도 산소포화도가 계속 떨어졌습니다. 노모를 보내드릴 마음의 준비도 아직 못한 중년의 딸이 달려와 어머니의 뺨을 치며 애원했습니다. “엄마! 제발 눈 좀 떠봐! 내 말 안 들려? 엄마!”
차츰 의식이 흐려지는 환자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모르는 보호자 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지도록 안내하고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는 것. 하필이면 가랑비가 누군가의 눈물처럼 내리던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가족들이 고인에게 인사를 하는 그 마지막 순간마저 코로나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지금 응급실 입구에 다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제발 엄마 얼굴 한 번만 보게 해주시면 안 되나요?” 그 제발이라는 말이 얼마나 간절하고 또 간절할지, 응급실 입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가족들은 대체 어떤 기분일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들려드릴 수 있는 대답이 어째서 부정적인 대답뿐인지……. ‘규정상 어렵다, 정말 마음은 온 가족을 면회시켜드리고 싶지만 보호자 면회에서 확진자가 너무 많이 나오고 있다’라는 말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목 놓아 우는 보호자 곁에서 함께 울고 싶은 심정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를 권할 수는 없었기에, 휴대전화의 스피커를 켜고 인사라도 하시는 건 어떨지 조심스레 제안을 드렸어요
“오빠, 엄마한테 인사해…… 엄마 들을 수 있어. 이야기해, 오빠…….” 가족들에게 연신 전화를 거는 보호자의 손은 눈물로 젖은 채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곧 휴대폰에서 들려온 목소리도 눈물로 젖은 채 떨리고 있었습니다. 생전에는 미처 고인에게 전하지 못했던 말들이 띄엄띄엄 이어졌습니다. 휴대폰을 타고 목소리만이 아니라 감정까지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어요. 차마 다 헤아리지 못할 슬픔, 마지막 인사조차 할 수 없다는 절망감, 그간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 그렇게 몇 사람이 인사를 마치고, 이어 며느리의 전화가 이어졌습니다.
“어머니,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힘드셨죠. 우리 천국에서 다시 봬요. 제가 꼭 어머니 뵈러 갈게요. 기다려주세요.” 담담한 말투로 슬픔을 억누르는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옆에서 조용히 대화를 듣던 나는 결국 눈물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곳을 뛰쳐나와 처치실로 갔습니다. 눈물을 닦고 다시 나가려고 해봐도 문고리를 잡는 순간 다시 눈물이 터졌습니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지금 가장 힘든 건 내가 아니라 저분들일 텐데…….’
한참, 정말 한참이 지나고서야 다시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임종 후 고인이 된 환자를 처치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할머니, 꼭 천국에 가세요. 천국에서 온 가족들이랑 꼭 다시 만나시길 기도할게요.’
그렇게 내 나름대로 고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지친 몸으로 퇴근을 했습니다. 퇴근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지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딱 지금 내 상태처럼. 코로나가 오늘도 또 환자의 몸을, 그리고 보호자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차가워진 고인의 손을 어루만지며 “간호사님, 고생 많으셨어요. 간호사님 덕분에 엄마한테 마지막 인사를 잘할 수 있었어요.”라는 말과 함께 희미하게 미소를 짓던 보호자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 고생 많으셨다는 말 아래에 쌓인 감정의 높이, 또 미소 아래에 감춰진 상처의 깊이를 감히 내가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족의 죽음에 참관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죽음 앞에서도 어쩔 수 없는 코로나가 슬프고 또 슬픈 이유입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