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의 표현력이 궁극적으로 얼마나 커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VR이라는 아이디어에는 언제나 작은 흥분의 고갱이가 들어 있다. 모든 경험을 자신의 통제하에 남들과 대화적으로 공유하는 것, 총체적 표현 형태에 대한 접근법, 자각몽의 공유, 지긋지긋한 물질성에서 벗어나는 것 ─ 우리는 이것을 추구한다. VR은 이 세상의 주어진 상황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 양식이다. --- p. 16
국경 지대에서는 복음주의자, 푸에블로족, 가톨릭, 히피 등 온갖 종교인이 출몰했다. 언제든 말썽이 벌어질 수 있었다. 한번은 멕시코 코퍼캐니언 지역에서 온 샤먼 때문에 격분한 적이 있었다. 그는 한쪽 눈이 마노 의안(義眼)이었으며 몸에 리본을 달고 있었는데, 우리 어머니를 만났다며 돈을 달라고 했다. 엘러리에게서는 몇 푼 뜯어냈을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을 겪느라 우리 둘 다 마음이 약해져 있었으니까. --- p.47
VR을 설명하기 힘든 까닭은 한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VR은 어느 분야와도 직접 연결될 수 있다. 나는 수학과, 의학과, 물리학과, 언론학과, 미술학과, 인지 과학과, 행정학과, 경영학과, 영화학과, (당연히) 전산학과 등에서 방문 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 전부 다 내가 VR이라는 한 분야를 연구한 덕분이었다. --- p.91
난데없이 아기가 생겼다. 나는 젖먹이와 젖병을 들고 아벨 군론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 즈음에 약간 사회화되기는 했지만 내게는 여전히 청년 히피와 자연인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대학원 수학 세미나에 아기를 데리고 나타나는 광경은 괴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행히도 자녀를 둔 수학 교수가 몇 명 있어서 기저귀 갈기와 분유 타기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 p.120
코드가 정확하면 경이로운 감각이 몸으로 느껴진다(적어도 예전에는 그랬다). 믿을 수 없는, 거의 메시아적인 감각이다. 우리는 조금 당혹스러워하며 이 경험을 나눴다. 신비주의는 합리성의 요새 밑에 파묻어 숨긴 채.
그런 느낌을 받을 때마다 해당 코드는 버그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신기하고 거의 신성하기까지 한 순간이었으며, 매우 드물게만 느낄 수 있었다. --- p.166
우리가 만든 최초의 장갑은 센서만 달렸기에 완전히 수동형이었다. 손의 모양은 구별했지만, 신체 감각을 직접 전달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버저, 히터 등을 실험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중 어느 것도 대중화될 만큼 눈부신 성능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 p.208
팀의 소개로 나머지 환각제 세계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사샤 셜긴이 맘에 들었는데, 그는 경이로운 화학자였으며 버클리 뒤쪽 언덕의 작은 시골 오두막에 숨겨진 세계 수준의 화학 실험실에서 미국 정부의 특별 허가하에 새로운 환각제 수백 가지를 발명하고 시험했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누구보다 명석하고 다정다감했다. --- p.243
최초의 모의 수술 장비는 실용적 구현이라기보다는 개념 증명에 가까웠다. 두 번째 것은 좀 더 까다로웠는데, 이번에는 담낭 수술용이었다. 우리와 협력한 의료인은 릭 사타바 대령이었다. 그는 의무관으로, (첨단 기술 분야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던) 방위 고등 연구 계획국DARPA 산하에 의료 VR 연구부를 창설했다.
--- pp.336-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