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로서의 인간의 출산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사회적 존재로서의 출산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문명사의 비극은 가부장제가 전자와 후자를 대립적 관계로 만들고 여성의 몸을 남성 공동체의 소유로 삼아 여성에 대한 폭력과 죽임, 시민권 상실을 제도화했다는 사실이다. 출산 담론은 간학제와 다학제를 넘어선, 모든 지식의 전제다. 이 책은 생명과 삶(life), 우리의 일상(everyday life)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다.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인생을 논할 수 없다. 좀 더 소박하게 말하면 저출산, 연애, 친밀감, 가족을 말할 수 없다. 30년 전 처음 마거릿 생어를 읽었을 때도 지금도, 나는 인류 역사상 그가 가장 위대한 사상가라고 생각한다. 그를 통해 여성은 자기 경험을 해석할 언어를 얻을 것이요, 남성에게도 이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정보와 관점을 두루 갖춘, 놀랍도록 ‘흥미로운’ 역사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 정희진 (여성학 박사,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초빙교수)
새로운 세상은 언제 오는가? 이전 세상의 거주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조건이 주어질 때다. 인간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다. 이들의 생물학적 조건, 즉 자녀 출산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옛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재생산을 여성이 결정할 수 있는 세상을 생어는 바랐다. 그것은 흔한 ‘낙태 찬반’이나 ‘태아 생명권 대 여성 신체 자기결정권’과는 다른 논의로, 애초에 임신 결정 자체를 여성이 할 수 있는 세상을 추구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구습 속에 살고 있다. 구습이라고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구습이 구성원 모두를 생물학적 이유로 차별 대우하고 있으므로 변혁해야 한다. 여성은 임신의 의무를, 남성은 보호의(또는 노동의, 군역의) 의무를 질 것을, 양자에게 그 생물학적 특징, 소위 여성성과 남성성으로 서열을 부여할 것을 구습은 정당화하고 있다. 명백한 불의를 타파하자고 주장한 생어의 책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 모두의 새로운 세상을 위해, 그가 100년 전에 했던 주장은 지금, 다시, 면밀히, 정확히 읽혀야 한다.
- 김준혁 (의료윤리학자,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