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의 숨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필사적으로 게임에 빠져들려고 하고 있었다. 그걸로 귀찮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키오는 우두커니 선 채 아들의 갈색 머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텔레비전 모니터에서는 화려한 효과음이며 음악이 흘러나왔다. 캐릭터들의 비명이며 고함 소리도 뒤섞여 있었다.
아들의 손에서 컨트롤러를 빼앗아버리고 싶었다. 텔레비전의 전원을 꺼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판국에서도 아키오는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전에 한 번 그랬다가, 나오미가 반미치광이 상태가 되어 집 안의 물건을 때려 부수는 꼴을 목격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키오가 힘으로 잡아 넘어뜨리려고 했더니 도리어 맥주병을 치켜들고 덤벼들어왔다. 아들이 휘둘러 내리친 맥주병이 아키오의 왼편 어깨에 맞았다. 덕분에 거의 2주일 동안 그는 왼팔을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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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오미가 소녀를 살해하기 전까지 어떤 행동을 취했었는지, 아키오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어쩌면 분명하게 목격자가 나왔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럴 경우에도 어떻게든 대충 속여 넘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아키오는 마음을 다지고 있었다. 이미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도 막상 경찰이 찾아왔다고 하니 역시 불안과 두려움으로 다리가 후르르 떨릴 것만 같았다. 프로 수사원들을 상대로 아마추어인 자신의 속임수가 어디까지 통할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고 솔직히 끝까지 버텨낼 자신도 없었다.
문을 열기 전 아키오는 눈을 감고 열심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슴이 마구 뛰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겠지만, 호흡이 지나치게 흐트러져 있으면 경찰관들도 수상하게 생각할 게 틀림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라고 아키오는 스스로에게 뇌까렸다. 경찰관들이 집에 찾아왔다고 해서 반드시 뭔가 들통이 났다고 할 수는 없다. 단순히 사건 현장 주변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니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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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 군이 일하는 방식을 잘 봐두라고. 자네, 이제부터 엄청난 상황에 입회하게 될 게야.”
말의 진의를 생각하느라 마쓰미야가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그럼, 수고해”라면서 전화는 끊겼다.
마쓰미야는 가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제 곧 너도 알게 돼. 하지만 이 말만은 해두지. 형사라는 건 사건의 진상만 해명한다고 해서 다 끝나는 게 아냐. 언제 해명할 것인가, 어떤 식으로 해명할 것인가, 그것도 아주 중요해.”
영문을 몰라 마쓰미야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가가는 그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 집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어. 이건 경찰서 취조실에서 억지로 실토하게 할 이야기가 아냐. 반드시 이 집에서 그들 스스로 밝히도록 해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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