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우에 한해 생각해보면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의 마음속은 주변 사람이 낸 상처보다 자기 자신이 낸 상처로 얼룩져 있다. 어쩌면 나는 오빠의 죽음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슬픔을 이겨내는 방편으로 원망의 화살을 나에게 돌렸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혼자 창으로 찌르랴, 방패로 막으랴 바빴는지도.
나는 아직도 어떻게 하면 나를 용서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평생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빠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평생, 자신을 탓하며, 그렇게 아파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조금씩 덮어둔 상처를 살짝살짝 들춰 여기가 아픈 데예요 서로 알려주고, 그곳에 약을 바르는 과정을 밟아나가다 보면, 같은 상처를 가진 동지로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나가다 보면 ‘용서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용서하는 법」중에서
어떤 식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남겨진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상실이 있고, 조금씩 결이 다를 그 모든 상실을 내가 제대로 잘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형제를 잃은 상실은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에 어떤 그늘이 드리워지는지, 몸에 어떤 슬픔이 새겨지는지, 기억에 어떤 자물쇠가 채워지는지, 앞으로의 시간에 늘 누군가가 놓쳐버린 그 시간이 어떤 식으로 겹쳐지는지. 무엇을 부정당하고, 무엇을 억압하며,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상실감을 안고 홀로 괴로워하고 있을지 모를 누군가에게 내 목소리가 가닿는다면 좋겠다. 나는 그랬는데, 당신은 어땠나요? 말을 걸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건네는 이야기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저 여기 있어요 손 들고 일어난 내 행위가 누군가의 마음에 위안으로 다가가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손가락이 닮았다」중에서
내가 나로 살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당신이 당신으로 살도록 놔두기도 의외로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이 맞고 너무 많이 때려서 폭력에 무감각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은 차치하더라도 우선 나는 내가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겸손해지면 좋겠다. 속수무책으로 떠밀리지 않도록 땅에 단단히 발을 디딘 채로.
---「내가 나로 살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중에서
“부모님을 위로해드려야지 따님이 이러고 계시면 어떡해요.”
병원 관계자로 짐작되는 사람이 오빠를 영안실에 보내고 병원 한구석에 주저앉아 있는 내 머리 위로 말을 쏟아냈다. 눈물을 흘리며 화장실로 간 엄마의 뒷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 사람의 말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래, 내가 힘을 내야지. 부모님이 쓰러지지 않도록 내가 옆에서 잘 보살펴야지.’ 다리에 힘을 주고 끄응,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엄마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마지막 발인 날 아침, 함께 있던 사촌 동생이 문득 “근데 누난 괜찮아”라고 물었다. 그때 알았다. 그동안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걸.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이 대부분 내게 “네가 부모님을 잘 위로해드려”라고 말했고,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나도 안 괜찮았다는 걸. 나도 슬펐다는 걸. 어쩌면 당시에 내가 정신이 없어서 괜찮냐는 말을 듣고도 잊어버렸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눈빛으로, 토닥임으로 건넨 위로를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위로를 받아들일 만큼의 여유가 없었을지도.
하지만 그때는 누구도 내 슬픔엔 관심이 없구나, 부모님 앞에서 나는 슬퍼할 수 없구나, 모든 것을 압도하는 그 슬픔 앞에서 한 알의 모래 알갱이 같은 내 슬픔은 흔적도 없이 쓸려가 버리는구나, 나라도 내 슬픔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나라도 날 불쌍하게 여겨야겠다,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착실히 위험한 자기연민에 빠져들었다.
---「슬픔에는 무게가 없다」중에서
“니가 어떻게 엄마한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바보처럼 멍하니 서 있던 내 머릿속에 반짝 불이 들어왔다. 연락이 안 된 그 며칠 동안 엄마는 남은 자식마저 어떻게 된 건 아닌지, 끊임없이 나쁜 상상을 되풀이하며 지옥을 걷고 있었겠구나. 오빠가 떠난 지 겨우 세 달 남짓, 아직 생생하게 피 흘리고 있는 그 상처가 나 때문에 더욱 애달프게 울부짖었겠구나. 매여 있지 않은 들소처럼 이곳저곳을 오고 가던 방임의 세상은 이제 끝이 났구나. 그때 처음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살던 세상이 달라졌음을. 몸을 뒤집고, 옷을 갈아입고, 색을 바꿔버렸음을.
그리고 나는 흐느꼈다. 전화기를 붙들고 엄마와 함께. 엄마한테 미안해서, 오빠가 미워서, 변해버린 세상이 너무 낯설어서.
---「좋은데, 딱 그만큼 숨이 막혔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