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88년에 학교에 들어왔다고 했다. 처음 1년 간 기초교양과 저주개론을 배울 때까지 그는 뛰어난 학생일 뿐이었다. 그러나 풍수학개론을 익히면서 유달리 동기감응에 집착을 했다고 한다.
그는 박제가-아마도 박제가일 거야, 라고 머리 나쁜 숀이 자신 없게 말했으므로 정확한지는 모른다-가 주장했다는 '그 아버지가 옥에서 맞아죽을 판인데도 자식놈들은 종기 하나 안 나는데 무덤 하나 잘 못 쓴다고 무슨 해가 있나?'라는 풍수비판론을 종종 화두처럼 증얼거렸다.
이것으로 보건대, 그의 관심은 실전 풍수에서는 확실히 무덤을 이용한 저주가 사람에게 미치는 데 반해 어째서 살아 있는 사람을 해하는 것은 사람에게 영향이 미치지 않느냐에 쏠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처럼 동기감응 이론에 얽매어 있는 이유를 물어보면, 동기감응은 비단 모든 저주의 기초 이론일 뿐 아니라 언혼, 풍수, 부적을 이용한 저주보다 저렴하고 대중적이면서도 위력이 확실하다는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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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입니다'
나는 상당히 당황해야 했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깎고 있는 사과와 숀이 우물거리며 먹고 있는 멜론은 모두 어떤 과일 바구니에 담겨 있던 것이었고, 그 과일 바구니는 아래층 217호의 어떤 아주머니 옆에 놓여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즉, 당당한 절도 품목인 것이다.
숀도 우물거리던 멜론을 든 채 멍하니 젊은 형사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몇 가지 질문 사항이 있어서 왔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 말에 숀이 화들짝 놀라더니 재빨리 접대용 미소와 대사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럼요. 네, 물론이죠. 간씨, 뭐해, 그 사과 얼른 깎아서 내드려.'
사람이란 얼마나 야비한 동물인가.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만약 과일 바구니 절도 사범으로 유치장에라도 들어가게 된다면 이 무슨 가문의 망신이란 말인가. 과일 바구니 절도 3범 김가인. 모르긴 몰라도, 족보에서 삭제가 될 만한 쩨쩨한 죄목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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