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나는 고독했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들은 내게 눈물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고통은 나를 고립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상처들과 내가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축복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말은 치유와 창조만을 위해 쓰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나는 이제 어리석은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어리석은 나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십 년 동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서 묵묵히 인터뷰어의 길을 걸어온 어리석은 지승호 씨와 나는 기꺼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 p.8
제가 농담으로 그러는데,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다 이혼하라고 할 거예요. 예수님은 뒤집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해요. 우리 아버지처럼 “네가 이혼하는 것도 싫지만 네가 불행한 것은 더 싫다”고 말씀하실 거 같아요. --- pp.34-35
가장 많이 했던 말이 “괜찮다”는 말이었어요. “너는 원본이야”라는 얘기하고요. 제가 만난 하느님, 신이 저한테 그랬어요.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정말 그렇게 말했던 거 같아요. “네가 못난 대로 살아도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하고, 정말 응원한다”고 하는데, 거기서 제가 무너졌거든요. --- p.72
제가 술을 마시는 이유 중 하나는 신경이 너무 많이 곤두섰을 때, 특히 글을 쓰고 나서 새벽 두 시쯤에는 자야 되는데 고슴도치처럼 쫙 일어나 있어서, (…)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좋아서 마신다는 거죠.(웃음) --- p.103
파울로 코엘료가 네 번 결혼했고, 파블로 네루다가 세 번, 헤세 세 번, 브레히트 세 번, 마가렛 미드가 세 번 결혼했는데, 그 사람들 얘기할 때는 아무도 그 얘기 안 하거든요. ‘당신 작품에 대해서 할 얘기는 없고, 너한테 궁금한 것은 사생활뿐이야’라고 하면 할 말 없어요. 하지만 저도 작품 얘기할 것 많거든요.(웃음) --- pp.136-137
다시 소설을 쓰게 된 힘은, 생활비.(웃음) 애들 학비랑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데 돈은 한 푼도 없고 빚더미에 올라앉았는데, 어떻게든 써야지.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으니 1차로 계약금 끌어다 쓰고, 나머지는 채워줘야 될 거 아니에요. --- p.163
“나중에 이혼하고도 어떤 소송을 걸 것이다. 그러면 절대 물러나지 말고 끝까지 싸워라.” 저는 책에서 하는 말을 잘 들으니까 ‘싸워야지. 내가 이렇게 무서워할 때가 아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 끝까지 싸워야지. 팔 걷어붙이고 까뒤집어서 한번 싸워보자’고 마음먹은 순간 판결이 난 거죠. --- p.189
영원히 문학을 버리겠다고 선서를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열렬히 소설가가 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나는 이 삶을 써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데, 약속을 파기하기 위해서는 내 절절함이 더 커야 하잖아요. 어쨌든 선서를 했는데, 그런데 그걸 파기하지 않으면 죽을 만큼 절절하더라고요. --- p.205
이야기에 대한 것은 일종의 본능 같아요. 우리가 의식주 같은 기본적인 거 빼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본능도 가지고 있고, 이야기를 갈구하는 본능도 있는데, 이런 것들은 아주 오래된 유전자 속에 박혀 있는 본능화된 어떤 것이라고 봐야죠. --- pp.231-232
너무 할머니 같아졌는지 모르겠는데, 진짜 요즘은 그냥 감사하다니까요. 특히 돈 걱정 안 하게 돼서 그게 제일 감사해요. 그거 이상 감사한 게 없어요. 《우행시》 쓰기 전에는 밤마다 애들 재우고 나면 잠이 너무 안 와서 소주 두 병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잤어요. 그때 잠 안 자고 그 생각만 했어요. 내가 막내 대학 보낼 수 있을까. --- p.275
저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제일 싫어요. 그럼 남이지, 지가 나야?(웃음) --- p.344
저보고 ‘버르장머리 없다’고 하면 우파 맞아요. 그건 맞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우파들이 더 말을 함부로 하고 더 상스럽게 하니, 우파가 아니죠. 그건 상놈이지.(웃음) --- p.352
내 작품은 감각하기보다는 생각하게 만들고, 약간 읽을 땐 괴롭지만, 읽고 나면 한 뼘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내 위치는 포르노와 혁명 그 사이 어디쯤이 되겠구나. 되도록이면 혁명 가까운 쪽에 서고 싶다”고 얘기한 거예요. --- p.368
“선생님, 꼭 한 번만 만나주세요. 듣고 싶은 말이 있어요”라고 하는데, 거기에 다 응해줄 수가 없어서 거의 다 거절했어요. 이 책이 만약 그런 갈증을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 p.385
농담 반 진담 반, 독자들에게 이 책이 《즐거운 나의 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 이어 ‘위로 3부작’이 되었으면 한다. 첫 번째가 소설, 두 번째가 편지 형식이었다면 이 책은 공지영이 독자들에게 직접 들려주는 방식이 될 것이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내가 공지영 작가에게 위로받았던 것처럼 많은 독자들이 그녀의 말을 통해 위로받았으면 한다.
--- p.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