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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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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최백규 | 창비 | 2022년 01월 2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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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72g | 125*200*8mm
ISBN13 9788936424695
ISBN10 8936424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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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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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태어날 내가 꿈결에 아버지를 부르면 수화기를 든 영이 돌아보았다
아랫목에는 그의 늙은 아버지만이 잠들어 있었는데

아직 누구 하나 놓아주지 못했지만 아무리 씻어도 빈손에서 향냄새가 가시지 않는 시절이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다
--- 「향」 중에서


나를 번역할 수 있다면 뜨거운 여름일 것이다

(…)

단 한번 사랑한 적 있지만 다시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너의 종교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몇평의 바닷가와 마지막 축제를 되감을 때마다
나는 모든 것에게 거리를 느끼기 시작한다

누군가 학교에 불이 났다고 외칠 땐 벤치에 앉아 손을 잡고 있었다
운명이 정말 예뻐서 서로의 벚꽃을 떨어뜨린다

저물어가는 여름밤이자 안녕이었다, 울지 않을 것이다
---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중에서


키스를 하면 멀리서 누군가 죽어간다는 말이 좋았다

(…)

문득, 지구가 몸속에서 또 심장을 밀어내었다

지평시차로 멀어질 때마다
전세계 성당은 천국으로 부서진 구조 신호를 보내고
신은 인간을 듣지 못한 척한다

십자가를 태워 올렸다

너무 아름다워서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고 믿었다
--- 「너의 18번째 여름을 축하해」 중에서


신을 배운 이후로 미안하다는 말보다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많았다

(…)

지옥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안녕과 안녕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바늘 끝 위에 몇명의 천사가 쓰러질 수 있을까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때쯤 결심한 것 같다, 세계가 망가지더라도 시를 쓰자 아름답게 살자 남은 인생을 모두
이 천국에게 주자
--- 「애프터글로우」 중에서


영혼 속 별들이 부서질 때까지
안아주었다

우리가 피어나려면 그토록 무성히 아름다워야 하나

(…)

나는 열없이 시들 만한 고백을 채색하려 해봐도
숨이 희었다

마음만으로는 안 되는 나이였다 살아서 너의 모든 나날이 좋았다
--- 「백야」 중에서


우리가 그 여름에 버리고 온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아플까

(…)

몸속에 싱싱한 핏물이 돌고 돌아 우리를 다 태워버릴 때까지

멈추지 않는 이상 이 육체를 계속 사용할 예정이다

호흡이 뜨거워질 정도로 쏘아 올리면 단 한번만이라도 빛날 수 있을까
창밖에는 눈발이 몰아치는 언덕이 적막하다

시리도록 흰 여름이다
--- 「폐막식」 중에서


봄이 와도 죽음은 유행이었다

꽃이 추락하는 날마다 새들은 치솟는다는 소문이 떠돌고
창밖엔 하얀 유령들만 날렸다

(…)

두 발이 서야 할 대지가 떠오르면 세계 너머의 하늘이 가라앉고 나는 그 영원에서 기다릴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세상이 있었다
--- 「지구 6번째 신 대멸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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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희거나 영혼이 흰 사람은 눈물도 흴 것만 같다. 흰 꽃처럼 글썽이던 눈물은 한여름 내내 눈으로 내릴 것만 같다. 흰 눈마다 향 사르는 냄새 자욱했을 것이다. 긴 장마였으리라.
“그립지 않아서 슬퍼할 수가 없”(「천국을 잃다」)는 상처와 성장통으로 하얗게 벼리어진 시편들이 여기에 있다. 최백규 시인은 21세기에 새롭게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가족이었다가 『나쁜 피』의 사랑이었다가 『입 속의 검은 잎』의 죽음의 수사였다가 드디어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의 한여름이 되는, 그런 통과제의를 온몸으로 통과해내느라 그리 기다란 시인이 되었나보다. 뜨겁고 눅눅한 한여름의 장마와 열사를 군더더기 없이 감각해내기에 최적화된 자세였을 것이다.
스물세살에 시인이 된 그의 첫 일성은 이랬다. “당신이 한없이 외로울 때 항상 곁에 머무르는 시인이 되겠다. 당신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겠다.”(당선 소감) 약속대로 그는 외로울 때 시에 깃들고 시를 살았다. 이제 갓 서른이 되어 첫 시집을 내면서 또 이렇게 일갈한다. “세계가 망가지더라도 시를 쓰자 아름답게 살자”(「애프터글로우」). 이 약속 또한 기도처럼 아름답게 지켜낼 것이다. 시가 그의 삶을 시처럼 살게 할 것이니!
- 정끝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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