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너랑 같이 있으니까 참 좋다. 네가 없었다면 난 무척 우울했을 거야. 아주 많이. 햇빛이 비치는 대낮에는 꿈 속을 헤매거나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어.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눈보라가 칠 때면 그런 것들로는 마음이 차지 않아. 그때는 누구나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원하지. 넌 잘 모를 거야. 열일곱 살짜리는 알 수가 없지. 열일곱 나이에는 앞으로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꿈꾸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 앤, 내가 열일곱 살 땐 꿈 속에 사는 마흔다섯 살짜리 백발의 노처녀가 되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단다.”
앤은 생각에 잠긴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아주머니는 노처녀가 아녜요. 노처녀는 타고나는 것이지 되는 게 아니예요.”
라벤더는 기발하게 앤의 말을 흉내냈다.
“어떤 사람은 타고났고 어떤 사람은 일부러 노처녀가 되지만 어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노처녀가 되기도 하지.”
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아주머니는 일부러 노처녀가 된 사람이겠군요. 아주머니는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노처녀들이 모두 아주머니만 같다면 아마 노처녀 되는 게 유행할 거예요.”
--- pp.278~279(에이번리의 앤)
앤은 그 신문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리고 벌떡 일어섰다. 합격자 명단이 나왔다! 머리가 빙빙 돌고 심장이 아프도록 쿵쾅거렸다. 앤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다이내나가 복도를지나 너무 흥분해서 노크도 하지 않고 방으로 뛰어들어오기까지 한 시간이나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앤, 너 합격했어. 그것도 일등으로. 너하고 길버트가 공동 일등이야. 그래도 네 이름이 더 먼저 나왔어. 오,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다이내나는 그렇게 외치고는 신문을 탁자에 던져 버리고 앤의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숨이 차서 더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앤은 손이 떨려 성냥을 여섯 개나 버리고 나서야 램프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신문을 잡아챘다. 그렇다, 앤은 합격했다. 200명의 아이들 이름 제일 위에 자기 이름이 있었다!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순간이었다.
--- p.352(빨간 머리 앤)
"나는 다음에 올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 여기 내 환상과 꿈을 남겨두고 갈테야"
이 방에서 창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드렸고, 창 너머로 솔숲 뒤로 해가 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또 여름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고, 봄이면 창틀을 내려와 앉는 개똥지빠귀를 반갑게 맞았다. 누군가 울고 웃고 즐거워하고 슬퍼했던 방을 영원히 떠날 때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그 무엇이 추억처럼 거기 남아 있게 되리라..
---p. 311(레드먼드의 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