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기의 외부 세계와 타인을 단순화?정형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남자 친구도, 여자 친구도, 자식도, 부모도, 정치인도, 정당도, 야구팀도, 연예인도. 그런데 세상과 타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이 복잡성을 인지하는 데 드는 생각의 수고를 회피하려면 사물과 대상을 단순하게 줄여서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오래 생각해야 하는 수고가 덜어진다. 가장 쉬운 방법이 생각해야 할 대상을 둘로 나누는 것이다. 왼쪽-오른쪽, 나쁜 사람-좋은 사람, 잘생긴 사람-못생긴 사람, 가진 자-못 가진 자, 햄릿-돈키호테, 천사-악당. 이렇게 나누면 아주 편하고 모든 것이 간명해진다. 그러나 과연 세상의 모든 것을 둘로 나눌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전면적으로 나쁘다거나, 완벽하게 좋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마음의 평온을 추구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세상과 사람을 제대로 보는 일을 허투루 한다면, 내 존재가 타인의 의도대로 휘둘리게 된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짜놓은 각본에 자신의 인생을 맞추게 된다.
지성인은 타인이 던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성인이란 소문을 그대로 믿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허상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깨어 있기 때문에 종종 오해받고, 아직 잠에 취해 있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남의 말, 남의 신념에 도취된 꼭두각시가 되지는 않는다.
---「『햄릿』 편 중 [당신은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중에서
광대는 바보기 때문에, 광대가 한 말은 바보의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광대의 발언권은 특권을 가진다. 광대는 리어 왕이나 고너릴?리건 같은 왕족, 켄트 같은 고관대작들을 비웃고, 조롱하고, 직설적인 언어를 쏟아부어도 목이 잘리지 않는다. 광대에게는 ‘해서는 안 될 말’이 없다. 무언가 잘못된 조직, 잘못되어가고 있는 사회일수록 진실과 충언은 종종 해서는 안 될 말, 주변을 긴장시키고 얼어붙게 하는 말이 된다. 진실과 충언을 하는 역할이 바보 광대에게만 허용되는 사회, 그것이 단지 리어의 시대에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리어 왕』 편 중 [바보는 리어인가 광대인가」중에서
그렇게 바라던 왕이 되었음에도 그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왕관은 잡을 수 있었지만, 욕망은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베스의 모습은 우리 삶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입학하고 싶었던 학교든, 원하던 직장이든, 오르고 싶던 지위든, 우리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우리 욕망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욕망의 숙명은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욕망을 실현한 그 순간부터 결핍의 맨 얼굴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러므로 야망을 품은 사람은 늘 배고플 수밖에 없다.
---「『맥베스』 편 중 [이데올로기, 맥베스를 뒤흔들다」중에서
이렇게 자기의 태도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어떤 일이나 상태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는 심리 상태를 정신분석이론에서는 ‘투사projection’라고 한다. 자기 마음속의 응어리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일어나는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과 같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림으로써 자기 책임을 부정하고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는 심리 상태다. 오셀로, 이 사람은 비겁하다. 아내를 죽일 때는 그 이유가 아내의 부정 탓이었고, 아내의 부정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을 때는 이아고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다.
자기 행동의 결과를 자기가 책임지는 사람을 우리는 ‘어른’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어른들은 “미안하다”와 “내가 잘못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오셀로는 이 말을 결코 하지 않는다. 맥베스가 결코 하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맥베스가 마녀들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처럼 오셀로도 이아고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오셀로』 편 중 [오셀로가 믿은 이아고의 ‘정직함’이란」중에서
희망은 보여주지 않고 경쟁과 굴종만을 강요하는 살벌한 시대입니다. 우리가 기댈 언덕은 없고, 우리를 휘감으려는 선전과 유혹만 가득합니다. 정치도 종교도 버팀목이 되어주기는커녕 우리의 열정을 동원하려고만 합니다. 특히 청년들이 감내해야 할 현실은 혹독합니다. 가장 황홀해야 할 시기에 가장 팍팍한 현실 앞에 벌거숭이로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이 가슴 아픕니다. 나는 이런 현실 앞에서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거라고, 정신력의 힘으로 버티라고, 차마 그런 낭만적인 조언을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체득하라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기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휘둘리지 않는 힘’의 원천을 나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속에서 발견했고,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쓴 이유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 또한 우리처럼 꿈과 현실의 간극 앞에서 좌절했지만, 그들을 비극으로 몰고간 가장 큰 원인은 그들 자신의 욕망과 아집과 열등감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유혹과 욕망도, 세상에 맞서서 나를 지킬 무기도 결국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글을 마치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