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집은 진실로 미궁이로구나. 사람도, 집도 미궁 속의 미궁이야!” 탄식과 탄성이 뒤섞인 말을 뱉고 인후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차갑고 어두운 구름이 어느덧 밀려와 있었다. 하지만 운영각의 맞배지붕은 그보다 더 어두운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사람을…… 어찌 그리 가둬 둘 수 있었을까…….” --- p.98
“대신…… 대신 아팠으면…… 너를 대신하여 내가 아팠으면……. 매를 맞고 처참해진 내 꼴을 보고 네가 울면서 그랬지. 나를 대신해 네가 아팠으면 좋겠노라고. 꿈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어. 꿈이 아닌 현실에서 그리 말해 주었지. 지금 내가 그러하구나. 네 몸의 모든 열이 내게 옮겨지기를 매일 빌고 있다. 내가 저주했던 그 천지신명께 사죄하며 다시금 빌고 있어.” 송옥이 앓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그녀의 손을 잡으며 송정이 말했다. 송옥의 열이 절정으로 치닫던 밤. 얼음장처럼 차가운 이마의 아래, 붉디붉은 열꽃에 몸과 혼을 빼앗긴 그녀가 송정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녀의 또 다른 애씀에 송정은 또 처음으로 표정을 바꾸었다. 고통이 차오름을 참을 수 없어 하는 남자의 표정이었다. --- p.123
한 걸음, 한 걸음 송정에게로 다가간 자하녀가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송옥의 눈동자로……. 송정은 그 눈동자만을 자신의 눈에 담으면서 답했다. “난들 왜…… 너를 데리고 달아나고 싶지 않겠니. 멀리 달아나서 이 향긋한 너를 품에 안고 싶지 않겠냐고…….” “그럼 달아나 버려. 나를 데리고, 품에 안고, 달아나서 가지면 되잖아. 달아나.” --- p.439
“내가 가진 것이라곤 오직 그 사람뿐이었으니까. 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모두 송옥이 몫이야. 생명도, 삶도, 모두 송옥이 것이야. 너도 알잖아. 무엇도 주어지지 않는 생이 얼마나 끔직한 것인지, 고통스럽고 분한 것인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단 하나의 불꽃, 그게 그 사람이었어. 너라면 놓칠 수 있니? 그 반짝반짝 빛나는 불꽃을? 내 손과 가슴이 다 타들어 가도 놓칠 수 없는 그것을?” 놓칠 수 없다, 그렇게 말하지만 자하녀의 손은 그것을 놓친 모양을 하고 펼쳐져 있었다. 가슴에서 부들부들 떨며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그녀의 손. 송정의 얼굴에서 가면이 떨어져 나가고 고통이 차올랐다. 눈썹이 일그러지고 입술이 뒤틀렸다. --- p.513
순간, 꽃향기가 그의 말을 막았다. 인후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그날 다 불타 버렸는데…….” 망우재 화단에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잡초와 뒤섞여 있었지만 꽃은 꽃이었다. 치자와 장미가 만개하고 앵두는 익어 볼을 붉히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이름 모를 들꽃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화단을 물들이고 향기를 뿜어냈다. “부인은 이것도 아시었소? 이렇게 꽃들이 살아나 피어 있다는 것을.” 송옥은 이제 인후의 품 안에서 벗어나 화단에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꽃들이 그녀에게 향기의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