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본은 건네받은 종이뭉치를 조심스럽게 펼쳐 보았다.
"우라노 공식(Urantian Formulas)?"
처음 보는 복잡한 공식이었다. 언뜻 봐서는 무엇에 관한 공식인지 대상의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공식을 풀기 위해 정말이지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네. 하지만 명확한 답을 구하지는 못했어. 어렴풋이 이해한 정도에 불과하달까. 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그러니까 누군가는 반드시 이 여정을 이어 가야만 해."
헥터 교수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분자이동에 관한 공식이라네. 내가 구한 답은 거기까지고."
그는 어스본의 손에 들린 종이뭉치를 톡톡 치며 말을 이었다.
"자, 이제부터는 자네한테 맡기겠네. 자네가 적임자야."
어스본은 무언가에 홀인 사람처럼 멍하니 종이뭉치를 들여다 봤다. 사랑이 떠나고, 세상이 끝날 것처럼 느껴진 날이었다. 어차피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헥터 교수는 유령처럼 조용히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어스본은 그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거대하고 무거운, 그러나 왠지 모를 설렘으로 가득한 벅찬 예감 때문이었다.
--- pp.11~12
어스본은 서점을 나와 근처에 있는 '홀리데이인'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놀랍게도 그들 역시 달러를 사용했다.) 방으로 들어가 습관처럼 TV를 켜고 소파에 앉았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분명 다른 세계에 와 있기는 했으나, 이전의 세계에서 한 발짝도 전혀 떠나오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호텔방 역시 과거에 수없이 보아온 다른 호텔 방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일회용 비누하며 갈색의 작은 삼푸 병, 우중충한 침대 덮개, 그리고 화장대 서랍 안에 들어 있는 성경책까지 모든 것이 똑같았다.
'우라누스가 정말 지구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면….'
지구인과 똑 같은 사람들이 사는 세계는 그에게 그다지 흥미로운 장소가 아니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러하다면 지구로 돌아가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는 기술을 다시 연구하고 개발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렇게 수백억 킬로미터를 날아온 이유는 지금까지 살았던 곳과 똑 같은 모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가진 다른 세계에 대한 열망은 그 무엇보다 뜨거웠다. 비록 두 여자에게 버림받고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해 시작한 연구였으나, 몇 년간 밤낮으로 우라노 공식에 매달리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그를 다른 세계로 보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 희망을 찾아주고 싶었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게도 희망을 빛을 던져 주고 싶었다.
………
이곳에도 전쟁이 있을까? 이들도 법과 규칙에 얽매여 살까? 암 같은 질병이 있을까?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그 미스터리를 이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곳에도 학교가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점수나 학점을 중요하게 생각할까? 이들도 비싼 고급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을까? 지구와 똑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까?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까? 겉모습만이 아니라 속까지도 우리랑 똑같을까? 이들에게도 두려움, 걱정, 평온과 같은 감정이 있을까?
봇물 터지듯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스본은 가지고 온 녹음기를 꺼나 떠오르는 질문들을 녹음했다.(문득, 갈아 끼울 건전지가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갑자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마지막 질문-이들에게도 두려운, 걱정, 평온과 같은 감정이 있을까?-을 녹음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다른 이의 입에서 '걱정'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TV를 봤다. 제법 '화면발이 잘 받는' 잘생긴 백인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시애틀, 미니애폴리스, 애틀랜타, 토론토, 어느 지역 방송국에 갖다 놔도 좋을 만큼 전형적인 앵커의 모습이었다. 그는 녹음기를 내려놓고 TV 화면에 집중했다.
"지역 뉴스에 이어 스포츠 소식과 날씨, 그리고 전국을 강타할 걱정 지수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걱정…지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걱정 지수라니? 어스본은 TV 앞으로 바싹 다가가 앉았다.
--- pp.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