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스럽게 특별한 날이 아니다. 오히려 판에 박힌 날에 더 가까운 날이다. 시장을 보고, 점심을 먹는다.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잠시 쓰기도 한다. 일 년이라는 퍼즐에 작은 조각일 뿐인 하루다. 기억에 남지 않는 날. 불행하지도,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하루.
글을 쓰고 난 뒤,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시장에서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실랑이를 벌이는 이유를 유심히 듣기도 하고, 산책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어르신의 모습을 곁눈질로 보기도 한다. 오늘 먹은 점심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머니에게 여쭤보기도 하고, 귀가가 늦으신 아버지가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묻는다. 퇴근한 동생에게 오늘은 어땠는지 질문을 던지며 귀찮게 한다.
일상을 고운 체로 걸러내 마음 서랍에 제목으로 넣어둔다. 어떤 글은 빠르게 써지고, 어떤 글은 서랍에 오랜 기간 머문다. 꺼내진 이야기에는 할머니와 아주머니의 실랑이가 아니라 정을 주고받고 계셨던 중이었고, 산책하는 동안 스친 동네 어르신은 자기 손자들을 자랑하기 바쁘시다. 점심에는 새로 만든 반찬 조리법을 알게 되고, 늦게 오신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출장을 다녀오신 모양이다. 동생은 오랜만에 오신 단골이 선물을 하나 전했다고 한다. 써 놓고 보니 별스럽지 않은 날, 판에 박힌 날이 사실은 아름다운 일상이었다.
글쓰기가 아니었으면, 흩어져버릴 날. 특별한 날이 아닌 오늘을 기억했을까? 난 오늘도 글을 쓰고 있다. 운이 좋게 응원해주는 분들도 계시다. 은퇴한 뒤 하겠노라며 미뤄둔 일인 글쓰기. 용기를 내어 하게 된 글쓰기 덕분에, 퍽 아름다운 일상을 선물 받았다.
별다른 일 없는 판에 박힌 일상을 가만히 보며, 재미있는 일도, 교훈이 될 만한 일도, 감동될만한 일도 찾는다. 글쓰기는 그 순간을 잡아내는 일이다. 잡아낸 이야기를 흰 바탕에다 검은색 글씨로 박아내고 나면 꽤 괜찮은 하루를 느낀다.
희미하게 흩어진 날을 잡으러 간다. 복잡하게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생각을 체로 걸러본다. 낮은 농도의 생각을 증류해 진한 문장으로 만들어 낸다. 그렇게 내 일상을. 하마터면 놓칠 뻔한 내 일상을 그대와 나누고 싶다.
---「프롤로그 | 기록해두니 퍽 아름답다」중에서
“최근에 들은 이야기가 있어. 어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자녀들이 생전에 사셨던 집을 정리하러 갔지. 장롱 속에 약이 한가득 있었다는 거야. 나이가 들면 몸이 조금씩 고장 나거든.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말이야. 불편한 몸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는 약을 한사코 거부하신 거지.”
“그러면 왜 약은 받아오신 거예요? 드시지도 않으실 텐데.”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자식들이 병원에 가라고 아우성쳤을 테니까. 자식들이 걱정하지 않게 병원은 간 거지. 약도 잘 먹고 있노라 말했을 테고. 할머니는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아. 삶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것일 수도 있고, 자녀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
“자식이 잘못한 일이네. 드시는 것까지 확인했어야지.”라며 비난할 사람을 찾았다. 이제 되었다 싶었다. 하지만 마음이 따가웠다.
---「돌아가신 할머니 장롱에서 먹지 않은 약이 한가득 나왔다」중에서
반려동물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다르다. 〈인터스텔라〉가 떠오른다. 주인공 쿠퍼가 딸을 떠나 우주로 가기 전에 이런 말을 한다.
“빛의 속도로 날거나 블랙홀 근처에 가면 아빠 시간은 평소보다 더 천천히 갈 거야. 아빠가 돌아올 때쯤 우리가 같은 나이일지도 몰라.”
반려동물 관점에서 우리는 늘 블랙홀 근처에 살고, 반려동물은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 우리 시간은 천천히 가고, 반려동물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견생 2년 차 몰티즈 희망이와 함께 산다. 지금은 내가 무척 나이 많은 형이다. 몇 년 뒤면 우리는 같은 나이가 될지도 모른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희망이’는 나를 추월해 간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희망이’가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널 날이 온다. 생각만으로 마음이 시리다. 다시 마음에는 문장이 하나가 날아 든다.
“반려동물의 시간과 내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흐른다.”
---「반려동물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중에서
아버지 담배 피우시는 모습을 가만히 봤다. 일사불란하다. 한 손에는 담배를 빼고 입으로 잡아두신다. 기다렸다는 듯 다른 손은 라이터를 찾는다. 바람이 불을 꺼트리지 않도록 손은 불을 보호한다. 이제 담배에 붉은 불이 환해진다. 검은 재가 만들어질 때 마다, 아버지는 긴 숨을 내쉰다. ‘후~.’ 다시 한 모금 숨을 들이쉬길 반복한다. 5분 남짓 재를 털고 꽁초를 가져 오신다. 가만히 바라보니 아버지는 호흡에 집중하셨다. 담배를 피우는 일은 곧 호흡에 집중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 불쑥 왔다.
“호흡.”
바쁘고 거친 삶을 사시는 아버지는 가끔 호흡을 잊고 사시는 건 아닐까? 숨을 챙길 겨를도 없는 삶. 앞에 놓인 시련을 이겨가는 일에도 바쁜 날이 반복된다. 중간 중간 호흡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 했을 테다. 그때마다, 호흡을 보여주는 담배를 찾으셨으리라. 담배는 잊고 있던 호흡을 집중케 한다.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흡연이다. 아버지는 담배를 태우며 호흡을 살피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왜 담배를 피우실까?」중에서
장사를 하는 처지에서 보면 사람이 없다는 게 참 답답한 일이다. 쌈밥집이 그러했다. 한 달 전 쌈밥집이 심상치 않았다. 우리 가게를 중개하신 부동산 중개소 소장님이 오셨다. 안타까운 이야기를 알렸다.
“쌈밥집 내놨어요. 다른 가게가 들어오면 카페에 손님이 더 올 거예요.”
짐작만 하던 경영난이 실체로 드러났다. 교류가 많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같은 건물에서 장사한다는 건 묘한 유대관계를 준다. 안타까웠다. 그렇게 다시 한 달이 지나자, 간판이 내려갔다. 다른 주인이 정해졌나 보다. 쌈밥집 주인이신 아주머니가 다리를 절뚝이며 동생 가게로 찾아오셨다. 아주머니는 관절염도 심해지셨고, 장사가 어려워 그만두신다고 한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까지 하시곤 돌아가셨다. 뒤가 쓸쓸해 보였다. 곧이어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간판이 올라갔다. 가게의 흔적은 착실히 지워져 갔다.
(...중략...) 가게 끝과 시작은 자주 있는 일이다. 무심하게 지나다니던 길에 있는 가게가 바뀌기 일쑤다. ‘임대 문의’가 걸리기도 하고 한동안 불이 꺼지고 새로운 간판이 들어서기도 한다. 이제는 그 일이 처량해 보인다. 같은 업계에 있다는 생각 때문일 테다. 가게가 끝난다고 해서 그분의 삶이 끝나는 건 아니다. 단지 삶의 매듭이 하나 지워진 것일 뿐이다. 가게의 끝은 다른 시작을 안내할 테다. 쓸쓸하게 가시는 아주머니에게 한 마디 건네지 못해 아쉽다.
---「이웃집 가게가 망했다」중에서
“엄마 나 크로플 사줘.”
“엄마는 안 먹어도 되니까 1인분이면 되지?”
“아니 오늘은 2인분 먹을래.”
그렇게 몇 분의 실랑이가 있었다. 엄마의 패배.
“크로플 2인으로 주세요.”
동생은 “포장할까요?”라고 하자. 아이는 계산대 밑에서 소리친다.
“아뇨 먹고 갈게요.”
동생은 아이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곤 결정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포장해주세요.”
아이는 강경했다. “먹고 갈래. 엄마 먹고 가자.” 이번에도 엄마의 패배. 어머니는 카드를 꺼냈고 동생은 6,000원을 결제했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빨리 먹자고 하곤 자리에 앉았다. 동생이 고소한 향을 내는 크로플에 아이스크림을 얹어 가져다줬다. 아이는 손뼉을 치며 포크를 어머니에게 건넸다. 조잘조잘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랑 이야기하니까 좋아. 엄마랑 같이하면 뭐든 좋아.”
(...중략...) 바쁜 엄마를 둔 아이는 철이 빨리 든다. 엄마는 돈을 벌고 있으니 나에게 많은 시간을 내어 줄 수 없다는 걸 아이도 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는 그래도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해 혼자 먹는 1인분이 아니라 함께하는 2인분을 고집한 건 아닐까?
---「엄마와 함께하기 위한 비용 6,000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