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볼을 축축하게 해가지고 은와니 박사님 상담실로 들어섰고 박사님은 빙그레 웃으며 힘 있게 악수를 한 후 내 뒤로 문을 닫았다. 그 첫날에 그분과 나는 약 한 시간 동안 우리 집 식구들에 관해, 힘바족 관습에 관해, 힘바든 쿠시든 가문에서 특히 딸들에게 거는 융통성 없는 기대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상대로서 굉장히 편한 분이었고 나는 쿠시족에 대해서 내 평생 배운 것보다 그날 하루에 더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힘바와 쿠시가 밤과 낮처럼 딴판이지만, 여자아이와 어른 된 여자 그리고 통제에 관해서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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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대략 45분 있었고 힘바와 쿠시 양측 취재진은 우리를 사람들 출입을 막아 텅 빈 공항 식당에 갖다 앉혀놓고 인터뷰를 했다. 질문들을 듣자 하니 공동체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혔다. “우리는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계속 체재하실 건가요?” “적과 친구가 되셨는데요. 우리 장로분들을 만나 지혜를 나누어줄 의향이 있나요?” “움자 대학행성에서 제일 좋았던 음식이 뭔가요?” “무슨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지금 제일 관심 가는 패션은 어떤 거죠?” “왜 돌아온 겁니까?” “그쪽에서 그냥 가라고 보내주던가요? 왜죠?” “무엇 때문에 가족을 버리고 떠났습니까?” “머리에 그것들은 무엇인가요? 아직 힘바족 맞습니까?” “아직도 오치제로 축성하고 있네요. 어째서예요?” “수학, 천문의 그리고 수수께끼의 물체. 빈티 양은 정말 놀라운 인물이네요. 움자 대학행성 구경을 했으니까 이제 집에 있을 건가요? 움자가 힘바족이 사는 초라한 고향보다는 훨씬 대단한 곳 맞죠?” “부족 출신 여자애가 되어서 움자 대학행성에 가니 그래 어떻던가요?” “머리에 그게 뭐예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도망쳤던 아가씨를 원하는 남자는 없습니다. 노처녀로 늙게 생겼는데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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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우주선에서 내가 한 일이 뭔지 알기는 해? 다들 죽었다고. 조종사하고 나 빼고는 다! 나는 그들이 그 일 하는 걸 직접 봤어! 나는….” “그랬는데 그 후엔 인류의 적을 친구 삼았지.” 내 등 뒤에서 베나 오빠가 말했다. 나는 홱 몸을 돌려 말했다. “아니, 쿠시족의 적이지. 잘 알면서. 오빠는 글 읽기 떼고부터 쭉 그이들 욕만 하지 않았어?” 나는 도로 베라 언니 쪽을 보았다. 언니는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이 끝을 혀로 차곤 역겹다는 듯 날 위아래로 꼬나보고 있었다. “지금 네 꼴 참 추하다, 빈티.” 언니가 말했다. “말하는 것도 아예 딴판이네. 더러운 게 옮았어. 나이는 거의 열여덟 살이나 먹어놓고. 어떤 남자가 너하고 결혼을 하겠니? 이제 네가 애들은 어떤 애들을 낳겠어? 네 친구 델레는 너 보고 싶지도 않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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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 나는 속삭였다. 한낮의 태양 아래 사막을 걷는 걸 그늘에 서 있는 것처럼 만들어줄, 날씨 대응처리가 된 가볍고 멋진 원단이다. 소녀든 어른 여자든 순례 때 입는 옷은 가장 비싼 옷, 보물처럼 아끼는 옷이다. 결혼 날이 될 때까지는 말이다. 나는 쓴웃음을 터뜨렸다. 이 옷은 내 평생 가장 비싼 옷, 보물처럼 아끼는 옷이 될 것이다. 아마도. “나는 결혼 못 해.” 내가 중얼거렸다. 내가 해놓은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혼자 킬킬 웃음이 났고 그 웃음이 더 커졌다. 곧 나는 배 근육이 뭉치도록 심하게 웃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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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다시 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밤의 가장꾼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마른 나무 막대기와 라피아 야자 섬유와 잎들로 이루어진 당당한 장신에, 이가 가득 나 있는 커다란 입과 둥그런 꺼먼 눈이 지배하는 나무 얼굴을 하고서. 둥근 턱과 머리 옆쪽에 라피아 섬유가 길게 죽죽 늘어져 있는 게 마법사의 턱수염 같았다. 그것의 머리 위에서는 짙은 하얀 연기가 뭉클뭉클 흘러나와 방에서도 벌써 건조하고 매캐한 연기 냄새가 맡아졌다. 오크우의 천막은 오른쪽으로 몇 미터 떨어져 있지만 그 속에는 오크우가 있을 터였다. “빈티.” 밤의 가장꾼이 우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애야. 큰 우주에서 온 작은 여자애.” 나는 신음했다. 공포에 숨을 쉴 수 없었다.
--- p.133~134
어른이든 아이든 남자라야 밤의 가장꾼을 ‘볼’ 능력이 있었고 힘바 가문들이 낳은 영웅들만이 보게 마련이었다. 보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입에 담지 않았다. 나는 이런 일을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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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걸 발견한 9년 전, 나는 그날 아침 사막으로 나와 있었다. 너무너무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온 터였다. 내가 화난 줄 아무도 몰랐고 내가 가출했다는 것도 누구 하나 깨닫지 못했다. 날 화나게 만든 일이 부모님이나 언니 오빠들한테는 하도 사소한 거라서 얘가 화가 났는지 아예 눈치채지도 못했던 것이다. 때마다 돌아오는 바람 축제 때 추는 춤이 있는데 내 또래 아이들은 다들 참가해 춤추는 걸 우리 부모님과 언니 오빠들이 나는 끼지 않는 게 좋겠다고 결정해버린 거였다.
--- p.154
내가 찾아낸 그 장치는 생명 소금 같은 맛이 났다. “이건 에단이란다.” 아버지가 말씀하셨고 나는 전에 그 단어를 들은 적 없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에단’이란 너무 오래되어서 아무도 그 기능을 모르는 장치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이라고 설명해주셨다. 어찌나 오래되었는지 이제는 다른 무엇이라기보다 예술품에 제일 가까운 것들 말이다.
--- p.173
“네가 우릴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 봤어.” 그 애가 말했다. “내가 마주쳐본 힘바족이란 힘바족은 다 그랬듯이 너도 꼭 그렇지. 우릴 야만인 보듯 해. 넌 우리를 ‘사막 사람들’이라고 부르지. 신비로운, 문명화되지 않은 검은 피부의 모래 부족이라고.” 내가 가진 선입견을 정말 부정하고 싶었지만 음위니 말이 맞았다. “너도 우리처럼 피부색이 한결 짙은 데다 우리처럼 관을 쓰고 있으면서 말이야. 우리 피를 받았으면서.” 그 애가 말했다. “우리가 우리의 세 개 언어를 하듯이 너희 언어를 할 줄 아는 걸 보고 네가 얼마나 놀라던지. 보니까 신기하더라. ‘사막 사람들’이라. 우리 부족이 실제로 이름이 뭔지 그래 알긴 하니?” 나는 느릿느릿 고개를 저었다. “우린 에니 지나리야야.” 음위니가 말했다.
--- p.185~186
“옛날 그 시절에 우리 부족은 지금보다도 작은 부족으로 떠돌아다니며 살았는데 지나리야와 굳은 벗이 되었지. 지나리야 중 많은 이들은 불과 몇 달 있다가 움자로 떠났지만 몇 명은 움자로 가기 전에 여러 해 동안을 우리와 함께 지냈다. 떠나기에 앞서서 그이들은 자기들이 어디에 있든 우리가 그들과 통신할 수 있게, 또 우리 사이에서도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도와줄 무언가를 주었다. 그들은 또 그걸 ‘지나리야’라고 불렀지. 그것은 우리 피에 맞게 재단된 살아 있는 유기체로, 부족 구성원 모두가 물에 타 마심으로써 체내에 도입했다. 우리 뇌에 편안하게 설치될 만큼 작디작은 생물학적 미세 기기지. 일단 그것들을 몸속에 갖게 되면 신경계에 천문의를 이식한 것같이 된단다. 그걸 먹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고 심지어 그냥 느낄 수도 있어.” 어떻게 내가 이걸 어림하지 못했을까?
--- p.195
“할 마음이 나느냐?” 아리야가 다시 물었다. 나는 소리 나게 한숨을 쉬고 머리를 흔들었다. “아리야 사제님, 전 이 일이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아요. 제 에단이 지나리야 기술로 된 거면 왜 그 외부 금속이 메두스를 죽이지요? 전 이제 부분적으로 메두스인데 그럼 왜 제 에단이 저는 안 죽일까요? 전 모르겠어요. 저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왜 제 에단이 산산이 분해되었는지, 그 구체는 뭔지, 왜 그게 문제가 되는지, 제가 왜 여기 와 있는지도요! 순례행 가려고 온 길인데 거긴 아예 가지도 못했네요. 여기 와 있지요. 지금 제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어디로 가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요!”
--- p.223~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