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가 과연 직장이라는 것을 원했던가? 모린과 나의 꿈이 과연 '아홉 시 출근, 다섯 시 퇴근' 인생일까? 런던에서 사는 것은 좋았지만, 교외에 살면서 매일같이 일터로 출퇴근하는 생활은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눌수록 그런 판에 박힌 삶은 우리와 더욱 멀게 느껴졌다. 마침내 우리는 진로 문제를 잠시 미뤄 두고, 1년간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러니까 현재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여행을 즐긴 다음 정착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포드사에 편지를 보내 일자리 제안은 기쁘지만, 1년 후에 일을 시작하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고맙게도 회사에서는 나를 위해 1년 동안 자리를 비워 두겠다고 답장을 해왔다. 나는 지금도 그 답장을 보관하고 있다.
--- p.20
"언젠가 하늘을 건널 때, 이 외로운 행성이 내 눈을 붙잡네."
"아니야, 가사가 틀렸잖아. '외로운 행성 lonely planet'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행성 lovely planet'이야." 모린이 지적했다.
모린의 말이 맞았다. 난 노래 가사를 틀리게 부를 때가 많았다. 그런데 왠지 '외로운 행성'이 더 그럴듯하게 들렸다. 좀 더 전문적이고 진지한 이름을 짓고 싶었지만, 론리 플래닛은 사람들이 절대 잊지 않을 이름이었다.
--- p.66
나는 어느 바에 앉아 저녁식사 장소를 찾으려고 스페인 가이드북을 빼어 들었다. 그때 내 양옆에 앉아 있던 두 커플도 같은 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포르투갈 가이드북과 다른 두 권의 론리 플래닛 가이드북도 갖고 있다고 했다. 내가 론리 플래닛에서 일한다고 말하자, 한 사람이 책의 지도에 대해 개선할 사항을 이야기했다.
"성가시게 뭐 그런 지적을 하니."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어차피 사장도 아닐 텐데 말이야."
--- p.268
비즈니스 업계에서 우리의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 일도 있었다. 인터브랜드 Interbrand 선정 2004년도 '리더스 초이스 브랜드' 조사에서 론리 플래닛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 6위로 선정된 것이다. 우리보다 순위가 앞선 회사는 소니, 삼성, 도요타, LG, 싱가포르 항공이었다. 우리 뒤로 톱 10에 들어간 회사는 버진 블루, 혼다, 홍콩상하이 은행 HSBC, 마쯔다였으니, 우리는 썩 괜찮은 회사로 인정받고 있는 셈이었다.
--- p.380
만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론리 플래닛이 그렇게 힘이 있다면, 전 세계 항공사가 우리 앞에 엎드리고 우리를 제왕처럼 떠받들어야 할 것이다.
"오! 토니, 모린 휠러 씨, 어서 오시지요. VIP로 모시겠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 p.417
우리는 대체로 우리 희망대로 책을 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모린과 나는 론리 플래닛의 신랄한 비평가이기 때문에, 아주 흡족하다는 판단을 내린 뒤에도 수정이나 개선, 추가가 필요한 사항에 대한 메모를 꼭 남긴다. 모린과 나는 가끔 이런 농담을 주고받는다. 우리 저자들은 자신이 맡은 지역을 우리가 여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벌벌 떠는데, 가끔은 그렇게 떨 필요가 있긴 하다고 말이다.
--- p.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