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막연한 질문은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그 자리에 그렇게 함께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한마디 한마디에,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어떻게 반응해야 ‘아빠다울지’를 몰라 늘 망설였고, 고민했고, 초조해했다.
--- p.23
나는 그런 아빠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망설임과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을 본다. 그 망설임과 두려움이 아이와 가족에게 때로 왜곡되어 표현되고,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낳아 회복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아빠들에게도 말하고 싶은 진심이 있다. 그걸 언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니 상처가 계속 덧나는 것이다.
--- pp.25~26
아빠도 슬프고 아프다. 그렇지만 이만큼만 슬프고 이만큼만 아프기를 도전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우리 삶을 선택하지 못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의 모든 것이 나를 짓누르게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 다 내 책임은 아니다. 그건 그냥 내게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 pp.40~41
사실 ‘가르쳐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많은 것을, 아이는 아빠의 행동과 태도로 드러나는 ‘아빠의 삶’을 보며 스스로 배운다. 그것은 말로는 가르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아빠는 무언가를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든든하게 ‘함께해주는’ 존재여야 한다. … 사람은 가르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삶을 멋지게 보여주는 어떤 존재로 인해 성장하는 것이다.
--- pp.59~60
청소년 시기를 지나는 아이들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는 노력도 필요하고 인내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잘 견뎌내기 위해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아빠인 자신의 마음을 건강하게 지켜내는 것이다. 이건 지식도 필요하고 가끔은 상담도 필요하다. 그냥은 어렵다.
--- p.88
아빠가 바뀌어야 아이가 바뀐다. 아빠의 생각이 바뀌고, 그래서 아빠의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그걸 바꾸는 것은 ‘나’를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과정은 사랑하는 내 아이와 마주하며 건강하게 싸울 힘을 얻게 해준다. 그렇게 힘을 얻은 아빠가 아이와 건강하게 맞서 싸워야 아이도 건강하게 그 시간을 지날 수 있다. 아이의 변화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 pp.110~111
‘정말, 진짜, 대박, 완전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다면, 좋은 아빠가 아니라 ‘그냥 아빠’가 더 낫다. 쉬는 날 집에 있고, 재미있는 일에 함께 웃고, 아이들이 잘못하면 그러려니 하다가도 생각나면 일장연설을 하기도 하고, 아이가 성적이 낮으면 걱정스러워 잔소리 한번 하는, 그냥 그런 아빠.
--- p.122
그 부정적 감정들은 무의식적으로 치환이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할 동력이 된다. … 그 대상이 나보다 강하거나 뒤끝이 있는 존재라면 치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치환의 대상은 나보다 훨씬 약한 존재여야 한다. 그 대상의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자신보다 훨씬 약하며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바로 ‘가족’이 되기 쉽다.
--- p.205
부모의 폭력은 아이를 두 가지 결과로 이끈다. 첫째는 강력하게 반항하여 자신의 삶을 망가뜨릴 때까지 부모와 투쟁하게 하는 것이다. … 또 다른 하나는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무기력감은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 그런 아이에게 생존의 과정, 삶을 의미 있게 살아내기 위한 명분으로 강요되는 모든 시도는 무의미하다. 생은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한 과정이고, 매일의 한 걸음은 무의미함을 벗어나기 위한, 죽음으로 향하는 길일 뿐이다.
--- p.207
그냥 자연스럽게 되는 일은 없다. 특히 관계와 관련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더욱 그렇다. 우리는 그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때로 그건 좀 창피한 일일 수도 있고, 얼굴에 소위 ‘철판을 깔아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존심을 좀 접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일 때도 있다. 때로 밤을 새우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고,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마음의 무너짐을 그저 견뎌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관계의 회복은 절대로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 p.213
엄마 아빠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아기의 웃어주는 눈빛이 우리가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삶에서 찾아오는 이런저런 어려움을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는 바탕이 된다. 퇴근하고 집에 온 아빠에게 안겨 그 작은 손으로 아빠를 부여잡는 아이의 마음이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킨다. 내가 있어서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있어서 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내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결코 돈으로 가늠할 수 없는 빚을, 우리는 아이를 키우며 조금씩 갚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 p.263
아이가 무엇인가를 잊어준다는 게 아빠에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때론 괜한 어리석은 책임감으로 야단치기도 하고, 때론 아빠의 바보 같은 감정에 휘둘려 짜증과 화를 내기도 하지만, 그래서 놀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도망가 엄마에게 안기기도 하지만, 아이는 조금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 품으로 다시 찾아 들어온다. 오히려 아빠는 아이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하는데, 아이는 벌써 그걸 까맣게 잊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와준다. 그렇게 안겨오는 그 아이가 너무나도 신기하고, 진심으로 고맙다.
--- p.268
아빠들의 어쩔 수 없는 부족함 뒤에, 드러내지 못하고 드러낼 방법도 알지 못하는 진심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가 아빠들에게, 그리고 그런 아빠로 인해 힘들고 지쳐 있을 엄마와 아이들에게도 서로에 대한 이해의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혀줄 수 있으면 좋겠다.
--- p.276